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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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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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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교회만 십일조를 내라고 하냐?(개독 질문, 개독들 답변)
글쓴이 : 봉제  (112.♡.135.93) 날짜 : 2013-11-05 (화) 06:49 조회 : 12681 추천 : 3 비추천 : 0

십일조는 우리나라 교회만내고 있나요 ? 지식머니 10

이현석(chib*******) | 2013-06-18 11:16 | 조회 3385 | 답변 26

십일조는 우리나라 교회만내고 있나요 ?

십일조를 우리나라 교회에서만 내고 있다고 어디서

들은거 같았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

답변 부탁 드리겠습닏 ㅠㅠ

이 질문에 답변하시면 지식머니 5, 채택시엔 40 을 더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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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채택

自性佛 | 답변 1498 | 채택률 98.2%

활동분야 : 불교 (31위) | 개신교 (44위)
본인소개 : 참선 카페의 카페지기입니다.___ 카페 이름 : 참선____ ...

십일조는 모든 사람과 함께 먹는 것입니다.

자기가 벌었어도 상속을 받았어도 모든 사람과 함께 먹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은 교회를 운영하는 것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 선조들이 들에서 음식을 먹을때 음식을 떼어서

고시네! 하면서 먼저 전체에 던저주고 음식을 먹었지요.

그것은 조금 나눠주는게 아니라 함께먹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교회만 있는게 아니라 세상의 이치인 것입니다.

그러니 십일조는 융통성이 없는 것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많이 내고 돈이 없는 사람은 오히려 도와주는 것입니다.

2013-07-23 13:57 | 출처 : 본인작성

파수꾼(rin****) | 답변 18428 | 채택률 43.8%

활동분야 : 개신교 (3위) | 종교 (2위)
본인소개 : 교계를 봐도 변질뿐이고 사이버 공간에서 사는 시대인데 사이버 공간은 ...

심일조는 구약적 헌금입니다

허나 신약적 기독교도 헌금은 다 합니다

헌데 우리나라만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나라가 다 합니다

허나 십일조를 구약적 면에서 하느냐 아니면 신약적 면에서 하느냐가 종교나 교단에 따라 좀 차이가 있습니다

십일조는 돈과 연관되서 모든 교회가 다 합니다

이단들은 더 합니다

이단들은 갈취 수준이죠

헌금에 대하여 더 강요하는 교회들이 좀 있죠

이는 성경적이 아닌 인본적 목회를 하기 때문입니다

십일조에 대하여 더 강요를 하는교회는 사기업화로 전락한 것으로 봅니다

2013-06-18 11:22 | 출처 : 본인작성

청솔향(abg****) | 답변 3801 | 채택률 29.5%

활동분야 : 개신교 (9위)
본인소개 : 삶, 그 하나뿐인 보석.

이도 좋고 저도 좋다고 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설마 십일조는 구약 것이니 안 받으시겠다고 하실까요?

2013-06-18 11:25 | 출처 : 본인작성

솨케드 | 답변 1707 | 채택률 37.9%

활동분야 : 개신교 (6위) | 종교 (5위)
본인소개 : 하나님의 일을 전하는"하나님의 사람,작은자"입니다/무릇 하나님의 영으...

십일조는 님께서

주님앞에 은혜로 맡겼으니

남들을 따를 필요는 없는 줄 압니다. 각자의 믿음대로 맡기셨습니다.

===================================

율법의 완성과 폐함에 대하여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성경말씀은 나무와 숲을 동시에 보아야 온전한 이해가 됩니다.

 

어떤 분들은 이 글을 이해하기를 율법은 하나님이 주셨고 또 예수님이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의 말씀을 주장하며 지키야 한다, 이를 어기면 죄라고 강하게 주장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2:16 말씀” 을 주장하며 율법을 다 지킬 수 없기에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주신 것이지, 이를 다 지켜야 되는 것이 아니며 이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사역으로 율법에서 해방 시켜 자유롭게 하였다 하며 율법 때문 죄 안에서 구속될 필요 없다고 하여 율법을 등한시 합니다.

 

두 부류 모두 말씀은 맞으나 조화를 이루지 못한대서 싸우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의 본 뜻은 율법은 지킬수만 있다면 지킬수록 좋다는 뜻입니다.

이때 지킨다는 뜻은 율법에 매여 종노릇하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삶을 사는데 귀중한 보석과 같고 하나님 앞과 이웃들에게 올바른 삶을 살기에 치침이 되므로 율법의 해방 가운데서 자유롭게 지킨다는 겁니다. 이 자유함 안에서 율법을 잘 지킬 때 상이 크다는 겁니다.

 

또 율법의 폐함의 바른 뜻은,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율법을 빠짐없이 지키기란 하늘에 별따기 입니다. 즉 행위로는 아무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알고 계시므로 이 할수 없는 일을 십자가의 보혈로 구속받게 하시어 죄사함의 은혜를 베푸신 겁니다. 그래서 이 믿음 안에 있는 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율법에서 해방되었다, 율법에서 자유함을 얻었다. 하신 겁니다.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8: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율법은 창세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에 보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지키라고 주신 십계명과 각종 계명들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거룩히 구별하여 살 것을, 모세를 통하여 전한 말씀 들입니다, 종류도 구분이 어려울 만큼 많습니다.

 

오늘날 이 말씀들을 우리들이 지킬 수 있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지킬 수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사 제도 같은 것은 오히려 지키는 것이 이상할 겁니다. 그리고 오늘날 생활 여건에 비추어 적용하기 어려운 것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부정한 고기, , 등 지킬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사람 몸 상태에 따라 부정한 고기들이 적용되기도 하고 술, 담배 등은 대부분 적용 될 것입니다.

이는 사람의 건강과도 연결되지만 하나님과의 영적교통을 이루는데도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이 보다 더 정요한 것은 이웃과 지킬 양심적 도리 등은 오늘날 그대로 적용될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하나님을 내 몸과 마음을 다해 섬기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의 본 뜻을 바로 깨달아서  믿음 좋은 자가 믿음 약한 자를 없인여기거나 정죄해서도 않되며, 믿음 약한 자가 믿음 좋은 자를 핍박해서도 않되는 겁니다.

 

다시 풀어 말씀드리면 믿음이 좋은 자는 율법에서 해방 되었지만 자신을 주님앞에 비추어 방종하지 않기 위해 율법을 잘지켜 하늘에서 크다함을 받도록 애쓸 것이고, 믿음이 약한 자는 세상에서 율법이 번거롭고 지킬만큼 강하지 못하여 자신이 행할 수 있는 법위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살겁니다. 구원은 주어졌으니 하면서,,,

 

이러하기 때문 해의 영광과, 달의 영광과, 별의 영광과, 별과 별의 영광이 각각 다른 겁니다.  각자 받은 은사와 달란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율법의 자유함에서 정결한 삶을 위해 이를 잘 지키면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고, 등한시 여기면 “천국에서 작다”일컬음을 받을 것입니다(5:19)

 

믿음은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시는 것이기도 하며, 또 자신의 의지로 나아가 빼앗기도 하는 겁니다. 즉 예정된 자(선택)도 있고, 말씀에 순종하여 구원될 자(자유의지)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예정은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붙드십니다,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요일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이 말씀이 이해됩니다

 

자유의지에 의해 구원될 자들은 <1:11~12>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1:12> “침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이 말씀이 이해됩니다

 

그래서 성경말씀도 선택된 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는가 하면  자유의지로 나아오는 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다는 겁니다. 이 말씀의 차이때문 두 부류가 끝없이 싸우는 겁니다.

한쪽만 알고 다른 쪽을 이해 못하기 때문 입니다.

 

이제부터 이런 일로 싸워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중요한 것은 율법 폐함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아직도 죄에 대하여 종노릇하는 자로서 구원이 없는 자입니다.

그런가 하면 율법의 폐함을 이유로 자유롭다 해서 세상에서 막난이처럼 방종하면서 제 멋대로 살면 진신로 죄사함받은 은혜가 내게 있는 지, 자신을 시험해 봐야 할 것입니다왜냐면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2013. 5. 30 하나님의 사람 작은자 (솨케드)

 

<추신>

어느 교단에서는 율법의 폐함을 두고 “죄에서 해방된 것이지 십계명에서 해방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하며, 또“죄의 법과 십계명을 혼돈해서는 안된다” 라고 합니다.그리고 십계명을 어기면 죄라고 정죄합니다.

 

이는 전체를 모르고 부분적인 걸로 해석하는 오류임을 알아야 합니다.

십계명과 각종 규범들은 전체를 총칭해서 하나님의 “율법”이 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풀어 말씀드리면 대한민국에 모든 법령들은 헌법을 기준으로 만들어 집니다. 즉 헌법은 법의 법입니다, 달리 표현하여 법의 아버지 입니다.

 

각종 법규들 중 크게 나누어 공법, 사법, 특별법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법은 헌법을 기준으로 하여 만들어 집니다. 이를 어기면 효력이 없습니다.

 

십계명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했을 때

이를 기준으로 제사법을 만들어 송아지, 양을 잡는 규례를 주신 것이지 이를 벗어난 규례는 없는 겁니다.

 

그리고 이웃들간의 규범들도 모두 십계명의 큰 틀 안에서 파생된 규범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이해를 돕기 위해 한가지만 찾아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십계명 중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 합니다. 이가 곧 십계명에서 파생된 율법입니다. 우리가 이땅에 살면서 이러한 실수 한번 안하고 산다면 그는 육신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신”일 겁니다. 이를 아시는 하나님이 이 죄에서 해방시켜 주시려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는데 이 크신 사랑의 은혜를 모르고 율법에 매이면, 이는 아직도 율법 아래 매여 종노릇하는 겁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이 크신 사랑을 힙입었다면 십계명을 잘 지키도록 힘쓰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하심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세상 살 때 자유함을 무기삼아 방종하며 막난이처럼 사는 모습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013. 6. 6 (솨케드).

 

2013-06-18 11:26 | 출처 : 본인작성

소금 장사 | 답변 15105 | 채택률 51.6%

활동분야 : 종교 (1위) | 개신교 (1위)
본인소개 : 주님 다시 오실 때 까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라가기를 원하...

십일금은 우리나라교회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구원의 사역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소득의 열의 하나를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합니다.

이 공간에서 십일금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지 말길 바랍니다.

목사가 십일금을 먹지 않으면 무엇으로 생활합니까?

십일금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목회자들이 있는 교회를 다녀보시길 바랍니다.

외관상으로는 안내도 된다고 하면서 들어가서 생활하면 더 많은 것을 갈취할 것입니다.

부흥회 한답시도 북치고 꽹과리 울리고 정신을 다 빼고 난 다음 있는 것 없는 것

다 바치도록 하는 곳이 사이비가 아닐까요?

성경은 그러한 헌금은 헌금이 아니라고 합니다.

자원하는 예물을 하나님께서 바라시죠.

그러나 자원하는 헌금외에 열의 하나는 주님께서 당신의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주님의 것이라고

구별하신 것입니다.

복을 받기 위하여서가 아니라 이 미 많은 복을 받았으니

구원만 하여도 얼마나 큰 것입니까?

이러한 은총을 받았으니 열 다 달라고 하여도 아무말 할 것이 없는데

그중 하나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이 인색하게 여게지나요.

하나님께 드리면 더 많은 것을 채워서 주실 것입니다.

그러한 은혜는 십일조 생활을 하신 분들을 통해 들어나게 될 것입니다.

주의 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 성도의 마땅한 자세가 될 것입니다.

2013-06-18 11:40 | 출처 : 본인작성

포도나무(eun****) | 답변 4959 | 채택률 71.2%

활동분야 : 개신교 (2위)
본인소개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우리가 드릴 십일조는 생명이지, 세상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하지 말아야할 돈을 왜 하나님예수께 드려야 하나요?

하나님예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예수로부터

생명[=생명의 떡과 생명의 포도주인 생명말씀]을 받았으니

그 생명을 지극히 작은 자와 나누는 것이 바로 우리가 드려야 할 십일조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업신여김을 받는 작은 자 하나에게

그 생명말씀을 먹이고 마시게 하고 입히는 것이

곧 하나님예수께 드리는 십일조가 되는 것입니다.

이 십일조에 대한 천국의 상급이 대단하다는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2013-06-18 12:01 | 출처 : 본인작성

세계제자교회 | 답변 2085 | 채택률 34.2%

활동분야 : 가정문제 | 개신교
본인소개 : 010-4528-6986 장로회 웨스트 민스터 [현] ...

1]레위기27:30-34절 십분의 일은 율법으로 이스라엘에게만 국한 된 율법입니다.

2]예수님 부활 후에 십분의 일을 내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사도들이나 성도들도 십분의 일을 낸 적이 없습니다.

 

답=고후9:7절=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 하시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는 것입니다.

마음에 오는 대로 즐겨 내시면 되고 없으면 없는대로 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성령님의 인도 받아 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과부의 두닙의 연보를 칭찬 하셨습니다.

 

특이한 것은 이단들은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2013-06-18 12:45 | 출처 : 본인작성

은혜 나눔 | 답변 1309 | 채택률 50.9%

활동분야 : 개신교 | 천주교
본인소개 : 기독교 신앙 상담 다음 까페 지기입니다....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만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온 목사가 그러더군요.

그런데 이것도 확인해 보지 않은 사실이라 믿기 어렵습니다.

그리스 정교회나 로마 카톨릭이나 독일 루터교 같은 나라에서는,

국가가 종교세를 걷기 때문에 별도의 헌금이란게 아마 없을 겁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국가 공무원이고 나라에서 지원을 받게 때문이죠.

 

십일조란 한국에서 개발한 독창적 작품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이 수출한 나라에도 있다고 합니다.

한국이 개발한 독창품이 3가지인데~

새벽 기도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거랍니다.

 

 

 

 

2013-06-18 13:04 | 출처 : 본인작성

산시산 | 답변 2120 | 채택률 82.4%

활동분야 : 불교 (2위) | 종교 (10위)
본인소개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다른 답변자님들께서 솔직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만 내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라졌습니다.

독일의 경우 개신교인이라고 스스로 인정하면 십일조를 내야 합니다.

미국의 몇개(한두 개 교파라고 알고 있음) 교파는 아직도 십일조를 거둡니다.

다른 나라에도 극히 일부에 남아 있는 나라도 찾아보면 조금은 있을 것입니다.

그 정도입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얼마를 내야 한다는 것이 없이 개인의 자유입니다.

우리나라 카톨릭의 경우 30분의 1을 보통 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개의 나라는 규정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에 나가는 것도 매주 나가는 신자는 많지 않고, 대개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나간다고 하는군요.

 

민수기 18:21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

민수기 18:24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므로

민수기 18:26 너는 레위인에게 말하여 그엑게 이르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아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때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게 드릴 것이라.

여기에 보면 본래 십일조는 레위족에게 주는 것입니다. 이들이 당시 정부 역할도 하였으므로 세금으로 내어 그 중의 십분의 일은 종교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레위족이 국가 경영과 생활비로 썼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오늘날은 국가가 따로 있으므로 국가에 세금을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십일조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13-06-18 13:15 | 출처 : 본인작성

선지엘리야(shpa*****) | 답변 13 | 채택률 0%

활동분야 : 해당 분야가 없습니다.
본인소개 : 성경속의 참진리를 찾아 그리스도를 발견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들어가는 말 (신앙배경):

이 엄청난 제목으로, 어떻게 쉽게 독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을까을 고민하였습니다. 본 제목을 소화해 내기 위해서는 (1) 성서적, (2) 역사적, (3) 신학적인 측면에서 광범위하게 다루어야 하겠지만, 위의 요소들을 일체 생략하고, 저의 개인적인 신앙성장 (Personal Testimony) 배경을 중심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저는 소위, 모태신앙으로, 기독교 가정에서 엄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성장 했습니다. 십일조와 주일성수는 물론, 돼지고기와 피가 묻어있는 고기까지 먹는 것을 금했습니다. 심지어 주일날은 굴뚝에서 연기나면 안된다하여 금식을 하면서 성장했는데, 율법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신앙생활은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굳어진 기존의 신앙체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는데, 바로 유학생활을 시작하면서 부터입니다.

(참고로 저는 그리스도의교회, 개혁장로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오순절교회, 성공회등에 장기간 출석하고 공부했거나 가르친 경험이 있습니다.)


십일조와 헌금바구니 없는 영국교회:

유학을 떠날 때가 1985년 7월이었고, 한 영국침례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예배 중 헌금바구니를 돌리지 않더군요. 처음엔 “특별한 날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헌금시간과 축복기도도 없는 겁니다.

몇 주 후에야 안 일이지만, 헌금바구니 대신 조그마한 편지통 모양의 상자 [헌금함] 가 교회 뒷편 코너에 놓여 있어, 원하는 사람은 아무때나 자유롭게 헌금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신앙의 척도로 간주되는 십일조, 작정헌금, 건축헌금등 각종 헌금도 없었습니다.


주일성수 없는 영국교회:

그 다음해 봄이었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부터는 300 여명이 모이던 교인들이 점점 줄어 드는 겁니다. 어느 화창한 봄의 주일날은 20여명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목사님께서 웃으시며 예배시간 전에 한 말씀입니다: “아주 좋은 날씨입니다, 우리 가족들이 봄 나들이 나갔군요, 모두들 즐거운 시간 갖기를 기도합니다.”

가족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고 공원을 찾는 것에 대하여, 그는 진심으로 기뻐해 주었습니다. 오히려 예배에 참석한 내가 민망할 정도였으니까요.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영국교회가 망했다더니 정말이구나.”

다른 교회들은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지 의문이 일기 시작했고, 그래서 한 달에 한번만 본 교회에 출석하고, 다른 교회를 순회/방문했습니다. 기회 있을 때 마다 웨일즈와 스코틀랜드 교회를 찾기도 했습니다.


십일조 없는 유럽 교회:

영국을 벗어나 유럽 다른 나라들의 예배형식이 궁금해졌습니다. 그 해 여름방학은 프랑스에서, 겨울방학은 독일에서, 이듬해 여름방학은 독일의 학생들과 합류하여 유럽16개국을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주일예배형식, 헌금방식, 십일조제도에 관해서 리서치를 수행했습니다.

오순절교회, 희랍정교회, 어떤 영국교회나 감리교회서는 헌금바구니를 돌리는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 교회들이 헌금바구니 대신 헌금함을 배치하였고, 십일조나 각종 헌금 제도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주일성수와 십일조에 대한 신념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학문의 세계로:

일단 유럽교회들은 십일조제도가 없고 헌금함이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 한 후, 여기에 대한 성서적 근거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석사과정에서는 조직신학이었지만, 박사과정은 구약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하고, 관련학과목인 고대 근동학, 고대문헌학, 고고학, 문서비평학, 성서언어학, 문화인류학, 고대역사학, 사회학등에 거침없이 도전했습니다.

세계구약학회 회장이기도 했던 원로 지도교수는, 지나치게 광범위한 연구분야가 요구됨으로 학위논문의 방향을 바꿀 것을 여러 차례 제시했지만, 6년동안 하루 평균 3,4시간의 수면으로 버티어 내는 열심에 감탄을 하더군요.

중간에 경제적, 학문적인 어려움으로 포기할 위기를 몇 차례 넘기며 외롭고 긴 유학여정이 끝나면서, 암흑속에 가리워졌던 기독교의 실상 (죄악상) 이 눈에 드어나기 시작했고, 십일조 제도나 각종 헌금갹출은 종교적 범죄행위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박사학위 심사가 끝나던 날 지도교수는 나를 끌어 않으며, “이 분야에서는 자네가 세계적 권위자라네”하며, 이젠 학자로서의 동등함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몇가지 팁:

* 이미 58호에서 언급했듯이, 아하스 왕을 포함한 역대 이스라엘왕들이 자녀들을 잡아 신께 바치는 가증한 짓을 한 것처럼(상하 16:2-3),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십일조를 바침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 16세기 천주교의 속죄권 판매를 거부한 종교개혁의 산물이 오늘날의 신교입니다. 그런데 정작 타락했던 천주교는 발전적으로 개혁이 되고 (물론 교리상 차이는 있음), 개혁의 결과로 태어난 신교는 타락하여, 완전히 주객이 전도되고 말았습니다.

* 종교개혁이후 유럽교회에서 십일조 제도가 사라지자 유럽의 교회들은 교회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영국교회는 운영난 때문에 한때 십일조제도를 눈감아 주기도 했습니다.

* 오늘날은 미국산 오순절교회가 영국을 포함한 유럽으로 파고 들고 있는데, 이들은 방언, 능력, 축복 뿐만 아니라, 철저하게 십일조나 헌금을 강요하는 추잡한 냄새를 풍기는 집단들입니다. 어떤 오순절 교회에서는 예배중에 헌금바구니를 3번 돌리는 곳도 있더군요.


먹사 공화국 대한민국:

학위를 받고 바로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유럽문화에 오랫동안 길들여진 탓인지 한국에서의 생활은 질식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부패한 정부, 무질서한 사회, 타락한 종교지도자들, 동서남북 어느 곳을 돌아봐도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게 아니라 먹사를 섬기고, 먹사는 교회을 장사하는 회사로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이런 실상들을 느끼거나 보지 못하고, 종교지도자들에게 세뇌되고 맹종당하고 있는 성도들의 모습을 볼 때 충격이었습니다.

종교적 부는 반드시 타락과 부패를 부릅니다. 한국교회의 부패와 타락은 돈이 지나치게 많은데 있다고 판단하고, 잘못된 십일조 폐지운동에 들어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우선 여러 대학에 교수임용신청서을 제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또 놀란 것은, 교수를 이미 내정해 놓고 광고만 내든가, 그렇지 않을 경우 1,2억을 요구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있더군요.


십일조제도 폐지운동:

3년간 세 곳의 대학에서 가르치는 동안 한국교회의 타락상과 종교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다가 두 대학으로부터 추방당하는 경험을 했는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학과마다 이사장이 심어둔 요원(?)들이 있더군요.

십일조제도 폐지운동의 많은 효과를 얻기 위해, 신학대학교수들을 상대로 몇 차례 십일조제도에 관한 공개토론을 제의했지만, 아무도 나서주는 상대가 없었습니다. 원고를 작성하여 각 기독교 신문사와 잡지사에 발송했으나 단 한곳도 원고를 실어 주지 않았습니다.

방향을 바꾸어 조선일보를 포함한 일반신문사와 인터넷을 통하여 십일조 폐지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때가 1996-1998년이었는데, 그 당시 쓴 원고들이 책 2권의 분량이 됩니다.

십일조제도 폐지라니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젊은층에서 서서히 반응이 일기 시작했고, 많은 격려와 문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들로부터는 수 없는 협박이 끊이지 않으면서 신상에 위험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러시아에 있는 한 선교사는 죽인다는 이멜을 거의 매일 보내 왔으니까요.

3년 가까이 한국에 있는 동안 그야말로 생사를 건 투쟁이었습니다. 철벽 같은 한국교회에 십일조의 파문을 불러 일으켰고, 지금은 소신있는 젊은 후배들이 나타나 그 바톤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가족을 잃고:

다시 영국으로 귀국(?)하게 된 동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타락상을 접할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그 동안 영국에 남겨두었던 가족을 잃게 되었습니다.

홀로되었으나 찢겨진 상처들이 많이 회복되었으며, 지금은 교회, 선교, 교육사업등과 관련하여 뛰고 있습니다. 재혼할 상대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위해서 기도해 주시면 ,,,,,,,,

오랫동안 준비한 학문은 결국 3년의 십일조폐지운동에 불을 붙임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학문적 자만을 꺽기 위하여 수많은 시련과 고통을 주셨고, 나의 삶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고 관섭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겸손히 살기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400년 전의 유럽교회:

지금의 한국교회 모습은 16세기 종교개혁이전의 유럽교회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한국교회는 유럽교회에 비해 400 년이 뒤떨어졌다는 뜻이 됩니다.

한국교회는 미국교회의 복사판입니다. 교회가 자본주의 사상에 물들게 되면 망하게 될 징조입니다. 미국교회는 완전히 자본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고, 교회의 부패와 타락상이 한국교회보다 10 년을 앞서가고 있습니다.


한국에 교인수가 많은 이유:

한국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유럽교회가 망했다는 설교를 즐겨 하더군요. 이것은 무식한 자들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종교개혁이후 교인수가 많이 감소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의 신앙은 율법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제가 볼 때 한국교회는 5%정도만 거듭났으나, 유럽의 교회는 98%가 거듭난 성도들입니다.

한국에 교인수가 많은 또 다른 이유는, 아직 한국인들의 삶의 질이 낮고 가난하며 사회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이 잘사는 시대에 무슨 말씀이냐고 반문하시겠지만, 인간이 종교적 성향을 갖고 있는 것은 그 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 경제적 상황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럽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시설이 어디나 잘 되어 있고, 사회복지제도가 완벽하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갖는 그런 불안의 요소들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한국에서는 교회에서 감당하고 있는 요소들을, 유럽에서는 사회복지제도가 모두 해결해 주기 때문에 반드시 교회를 찾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유럽교회들은 십일조제도가 없을까?

이 글을 통하여 어떤 위대한 신학이나 고상한 학설이나 지식으로 십일조 폐지의 정당성을 주장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저의 신앙적 배경을 자랑삼아 늘어 놓은 이유는, 단 한마디의 질문을 드리기 위한 준비과정이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이후, 왜 유럽교회들은 십일조제도를 단죄하여 교회로부터 추방한 것일까요? 유럽교회들이 폐지하고 있는 십일조제도를, 왜 한국교회들은 그토록 고집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관하여 단 한번이라도 진지하고 심각하게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남기고 싶은 한마디:

십일조제도는 한국의 돌팔이 교수, 삯꾼 신학자들이 빵 한 조각을 얻어내기 위하여 침묵으로 일관하고, 3대 근성 (명예-권위-탐욕) 에 눈이 먼 먹사 집단들이 만들어 낸 종교적 범죄행위입니다. 신앙이나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속지 마십시오.


[이 게시물은 (ㅡ.ㅡ)님에 의해 2005-07-05 20:22:30 자유게시판(으)로 부터 복사됨]

 

출처 : daum의 "성경진리연구회"

2013-06-18 15:58 | 출처 : 본인작성

blue-project | 답변 6948 | 채택률 38.9%

활동분야 : 개신교 (5위)
본인소개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사역으로 이루신 은혜를 깨닫고 거듭난 그리...

교회당이 저절로 세워지는 법은 없습니다.

누군가 돈을 내었고 헌금을 했기에 땅을 구매하고 건물을 세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목사가 돈이 많아 세우면 좋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그런 것이 아닌 구원받은 성도들이 자기의 노력으로 힘들여 번 그 물질을 일부 드려 교회가 나가고자하는 방향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나라에 십의 일 곧 세금도 내면서 하나님의 창조하신 세상에 살면서 값없이 먹는 물과 공기, 때에 따라 아름다움과 생명을 주신 분께 드리기를 아까와 한다면......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헌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그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가 점점 커지고 복음 곧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커가는 것을 볼 때 그 물질은 많은 영혼들을 살리는 일에 사용이 되며 건강한 교회로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주님을 더욱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적으로 볼 때 복음은 값없이 주님이 주신 것으로 값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어야 합니다. 복음을 팔고자 함은 아니라 그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 물질이 필요하고 노력과 함심이 필요한 것으로 그 일에 누군가는 동참을 해야 하는데 누가 참여를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바로 먼저 구원받은 성도들입니다. 그들이 희생이 없다면 복음은 거기서 멈추게 되며 주님의 생명을 전하는데 많은 장애적 문제를 겪게 될 것입니다.

 

 

2013-06-18 18:10 | 출처 : 본인작성

salem7979(zion*********) | 답변 78 | 채택률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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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는 우리나라 교회만 내고 있다 아니면 다른 나라 교회는 안 내는데 왜 우리나라 교회만 내야 하느냐 라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질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타난 십일조는 우리나라 다른 나라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 백성에게 내라는 명령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아니면 십일조를 내야 할 이유도 없고 낼 필요도 없습니다.

 

먼저 내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지를 확인해야 할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라면 십일조를 안낼 수 없는 조건을 갖춘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내는 십일조는 신령과 진정된 예배를 말하는 것 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모두 인간들에게 주신 것이나 너는 내 것이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 나를 바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하나님 안에는 우리나라 다른 나라가 없고, 우리 교회 남의 교회가 없으며, 교파도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있을 뿐입니다.

 

2013-06-23 08:15 | 출처 : 본인작성

박기철(vtm****) | 답변 6 | 채택률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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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석님 질문에 답변 드리 겠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레위지파를 하나님의 성전일을 하도록 맡겼 습니다. 하나님의일을 하기때문에 수입이 없었겠 지요 그래서 이스라엘 열 한 지파에게 생계를 위해서 생계비를 걷어서 레위지파 먹고 살게 하기 위해서. 열한지파가 생계비를 걷어 준것이 십일조 입니다. 그리고 참조할 성경구절을 알려 드리 겠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 각각 그마음에 정한 대로 할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자를 사랑하시느리라. 이구절을 해석 하자면 이렇 습니다. 헌금은 자기 마음에 정한대로 하면되시구요. 헌금을 낼려고 하는데 아깝다고 느껴 진다고 하면 내시면 안됩니다. 헌금은 내마음에서 진정으로 어울어져 나와서 내야 된다는 내용 입니다 그러고 성경말씀에 십일조 안내면. 지옥. 간다는 그런 말씀은 없습니다 우리가 헌금을 내는 이유는 목사님 생계비를 주는것이고 예배당 관리비를 내는것이고 그리고 남는 헌금은 가난하고 소외당한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사용 하는데 그목적이 있습니다
2013-06-24 17:50 | 출처 : 본인작성

청한수 | 답변 102 | 채택률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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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와 헌금(그리스도인 경제)

@헌금의 이유

①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②그러므로 모든 재물은 하나님의 것임

(시24: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③하나님께서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심

(신8: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십일조

④하나님께서 십일조 제도를 정하심

(레27:30)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⑤십일조 용도-레위자손(성직자)의 생계유지

(민18:21)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⑥신약시대의 예수께서도 십일조 제도를 인정하심(마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⑦십일조에 대한 불순종-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임

(말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⑧십일조에 대한 순종-하나님의 축복을 받음

(말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기타헌금

⑨십일조 이외의 예물(헌금)도 드릴 것임

(시96:8,9)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⑩모든 연보는 즐거운 마음으로 할 것임

(고후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2013-06-29 08:08 | 출처 : 본인작성

둔촌동주말씀교회 | 답변 0 | 채택률 0%

활동분야 : 개신교
본인소개 : 주말씀교회(둔촌동)목사

사단의 종들은 말합니다.

 

율법과 계명을 지키지 말라 ...

 

그러니  십일조운운 하는 자들은 누구의 자시이겠읍니까?

하나님은 내고 싶지 않으면 내지 마라 하심니다.

성령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제것도 제것이라하고

하나님의 것도 제것이라는 도둑입니다.

 

말라기에서 도둑이라고 하십니다

 

 

2013-06-29 12:31 | 출처 : 본인작성

아니스타시스 | 답변 1740 | 채택률 27.5%

활동분야 : 개신교 (22위)
본인소개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십일조를 율법의 십일조라고 합니다. [=레위의 반차]

자신의 죄로 말씀을 모르다가 깨닫고 난 후 드리는 십일조가 있습니다. [=멜기세댁의 반차] - 살렘의 왕.

 

레위의 반차인 십일조를 내는 것은 멜기세댁의 반차의 십일조를 내는 그림자적 행위지요.

즉 깨닫기 전에 깨닫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골대문전앞에서 슛을 많이 날려야 골도 들어가듯이

율법의 십일조를 하는것은 행위적 (=율법) 요소가 아닌 깨닫기 위한 하나의 방편입니다.

 

자신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진 상태였다가 이제 말씀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시작됩니다.

율법은 겉사람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주셨고

신약인 은혜법은 속사람을 장성하게 하기 위해 주셨지요 [=율법은 선한 법]

그러면 그대안에 양심이란 속사람과 욕심이라는 겉사람이 둘인가요? 하나인가요?

하나라고 하면 내보이시고 둘이라고 해도 내보여보세요? 그럴수는 없겠지요.

그러니 은혜법을 모르기 전에는 율법과 은혜법이 둘이지만

은혜법을 알고 나면 율법은 은혜법으로 변합니다. [왜?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해주었으므로]

율법은 장차 올법은 은혜법의 그림자라고 하지요.

그대가 태양아래 서있습니다.

그러면 그대의 몸의 그림자도 있겠지요?

그대가 움직이면 그림자는 가만있나요 ?[=율법의 십일조는 안해도 되나요?]

그대의 참몸이 과 그대의 그림자가 하나로 움직이는 것을 보면 둘중에 하나만 하는 것이 아니라

둘 다 해야겟지요?

둘중에 하나를 선택할려고 하는 것이 왜 그럴까요?

'돈'에 자신의 욕심이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해주어 자신에게 생명을 주었다면 그 생명을 준 자가에게 물질로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부활복음을 전하면서 그 교인들에게 육신의 것[=물질]을 받았더니만

교인들이 꿍얼거렸습니다.

육신의것을 거두고 영의 것을 주었건만 육신의 것을 거두었다고 꿍얼대는 교인들에게 물질헌금은 당연하다

고 하시지요.

즉 자신의 깨달음을 내밖의 사건으로 표현할 수 없으니 자신의 욕심의 상징인 돈으로 헌금을 하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물질로 헌금하기 싫다고 느끼면 [=아까워, 어떻게 ..내가 어떻게 번 돈인데...]라고 하면 물질의 종이지

물질의 주인이 아니지요?

아직 출애굽 [=정과 욕심의 노예로 사는 자] 하지 않은 자는 물질의 종(노예)가 되어 살지만

출애굽 한 자는 물질의 주인이 되어 살기에 물질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힘드시면 조금씩 내어보세요..

그러다가 다시 '어! 이거 별거아니네?' 하시면  물질의 양을 조금씩 더 늘려보시고요..

부담이 된다고 하는 물질의 양이 곧 그대의 정과 욕심의  죄값이니까요..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죄사함]받았다고 하는 확증을 십일조로 통해 확인해보시지요?

 

2013-07-05 09:12 | 출처 : 본인작성

스타워 | 답변 7 | 채택률 0%

활동분야 : 해당 분야가 없습니다.
본인소개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십일조때문에 교회내에 문제가 많이 일어나더군요 목사가 십일조 강요해서 영향력행사하던 신도가 교인들 데리고 나가는 일들과 어떤자는 십일조 천만원 백만원 하고 어떤이는 만원 십만원하고 경제적 레벨을 느끼게 만들어 위축감 느끼게 만듭니다. 문제는 신앙적 생활적으로 고민하는 교인들이 있는데도 신경도 안쓰고 자기자녀 유학보내는 일에 집중하는 목사들이 있다는 겁니다.
2013-07-13 10:07 | 출처 : 본인작성

andrew(and****) | 답변 3 | 채택률 0%

활동분야 : 해당 분야가 없습니다.
본인소개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한국개신교는 십일조가 없으면 망하는가?

십일조를 내지 않아서 망하는 교회라면 망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좇지않고 재물을 좇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망해야 한다.

지금 시대에 구약의 일부 이야기를 가지고 억지로 해석하여 적용하다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한국개신교 신자들을 알아야 한다.

교회 짓느라 낸 빚 갚는데 쓰여지는 십일조 내지말고 그만큼을 가난한 이들에게 직접 베풀라.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행동을 칭찬할 지는 자명하지 않은가?

지금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가 내려온다면 제일 먼저 심판하실 곳이 바로 한국개신교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브랜드일 뿐이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힌다면 그건 교회에 의해서 일 것이다.

한국개신교는 망해야 한다. 일단 망하는 것이 순수한 신앙 회복의 출발이다.

2013-07-16 23:04 | 출처 : 본인작성

장홍석(imdi*****) | 답변 551 | 채택률 19.2%

활동분야 : 유학,어학연수 (2위) | 육아,자녀교육
본인소개 : 민족고대 애국경영

모든 나라에서 하고 있어요,

물론 미국교회에서는 강조하는 교회 그렇지 않는 교회가 있을뿐입니다.

 

감사합니다.

2013-07-23 14:40 | 출처 : 본인작성

bjhong777(bjho*****) | 답변 5 | 채택률 0%

활동분야 : 해당 분야가 없습니다.
본인소개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세계교회가 시행치 않는 한국교회만의 이상한 십일조 제도

◈십일조제도는 비성경적◈

 

☞고동엽 http://blog.daum.net/ipssen/17948020



오늘의 한국교회 십일조제도는 분명히 비성경적이다. 이 십일조 제도는 복음과 함께 미국 선교사들로부터 한국 교회에 처음 들어왔고 이것에 대한 절대 순종도 배웠다. 그래서 지금도 역시 '십일조'에 관한 이야기는 비판없는 성역화 절대적 지식의 파편으로 한국 교회 모든 성도들의 뇌리에 절대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를 통한 한국교회 목사들은 기복(祈福)과 율법의 굴레로 성도들의 영혼을 옥죄며 실존의 자유를 속박하며 순수 신앙을 이념으로 변질시키면서 자기들의 생계와 치부에 목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은 절대 진리가 아니라고 말한다.

 

원래 이 십일조 제도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중동지방 전역에서 행해졌던 고대 관습인 일종의 세금형태로서 당시 모든 국민은 누구나 납세 의무를 지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는 고대 근동학이나, 고문서학, 사회인류학, 고대지리학, 고대역사학등에서 잘 나타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전문 분야에 대한 전공한 학자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설상 그것이 있다손 치도래도 한국 교회 풍토상에서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거의 희박하다. 이러한 베일속에 가려져 있는 이 분야를 속속히 해부해 들춰낸다는 것은 어느면에서도 보장받을수 없는 매우 위험스런 부담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베일속에 숨겨 있는 것을 벗기고 나면 허상만 남기 마련이다. 이 허상을 포장하여 이용하는 한국교회의 목사들은 73%의 샤머니즘과 신비주의, 기복신앙만을 양산하고 있다. 이제는 그런 요소들을 도려내는 대 수술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이 왜 비성경적인가를 여기서 논하려고 한다.

 

[말라기 3장 10절]"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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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베티      테레프        비히      하오브차르    뻬이트     엘         함마세르          콜     에트        하비우

    in-house-of-me food that-he-may-be the storage  house-of into the-tithe  whole-of   ***  bring

     나의집에    양식    있게할지니     창고에       나의집                    십일조             온전한             들여

 

  로        임     체바오브트     아도나이     아마르       바조트    나          하샤마임      아루보보트     우베하누니

  not        if        Hosts        Yahweh    he-says    in-this    now -     heavens     floodgates   indeed-test-me

만일 그렇지 아니한--만군의-여호와가  -말한다-     그것으로                하늘들              문          나를 시험하여

 

다이      베리     아드   베라카흐       라켐          바하리코티       에트      라켐    에프타흐

 room-enough not until blessing upon-you and-I-pour-out      **   for-you  I-throw-open 

풍족히 아니하나     까지   복을      너희위에      내가 부은다             너희를 위해      붓다.

 

 

 

 

 

 

 

 

 

 

 

 

 

 

세계 기독교인구는 22억 7천만명이다. 이 많은 기독교인들이 '십일조제도'는 분명히 성경적이 아니기 때문에 과거 시행하였던것 조차도 모두 폐지시켜 버렸는데도 유독 한국교회에서 많큼은 이 십일조 제도 시행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망원경을 통해서 넓게 보아야 할 구속사적인 성경을 특징적인 몇 구절의 현미경적 관찰때문에 하나의 프리즘 안에서 굴절되고 채색된 해석에 가늠 한다는 것이 매우 우려되지 않을수 없다. 좀더 심도 있고 깊이 있는 해석의 갈증을 느끼져지만, 사람은 저마다의 빛깔과 향기로 피어난 자신들만의 지식의 완성작품들이라고 포장한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교회는 성경 말씀 착시 이 현상을 자신의 평가 방정식에 집어 넣고 해석 하기 때문에, 네모난 바퀴로 굴러가는 힘든 교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처음 이 십일조 제도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그들의 신앙행위 표현으로 삼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고대 근동 지방의 많은 나라 즉 로마, 그리이스, 시리아, 카르타고, 우가리트 셈족 등에서 노동이나 전쟁 전리품으로 10분의 일은 문화적 관습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종교적뿐만 아니라 세상의 통치자들도 일종의 세금의 형태로서도 강제적 수탈했다.

 

성경 삼우엘상8장 5절 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에게도 왕을 세워달라고 사무엘에게 요구했다. 그 때 사무엘은 '만일 너희에게 왕을 세우면 너희들이 왕이나 궁정관리에게 십일조를 바쳐야 된다(삼상8장 15절)' 라고 하는 것을 보면 당시에 십일조가 왕에게 십일조를 바쳤음을 알수 있다."삼상8장15절-17절 '그가 또 너희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취하여 자기 궁정 관리와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너희 양떼의 십분의 일을 가져 갈 것이며 너희는 그 종이 될 것이다".

 

고대 세속 종교에서 그들의 신에게 10분의 일을 바치는 의미는 신은 땅의 소유자이며, 인간은 그 땅을 빌어서 농사를 짓는 소작농이라는 사상이 깊게 자리 하면서 십일조 기원을 삼고 있다. 또 그들은 자기들의 왕을 하늘이 내린 신의 아들이라고 인정하고, 신으로 숭배 했기 때문에 왕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이다.

 

창세기 47장 24절에 보면 애급인들은 바로왕에게 십분의 이를 바쳤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같이 이 십일조 제도는 율법에 정식으로 명시하기 이전에도 모든 열방에서 보편적으로 실시 하고 있었다.

 

다음은 구약 성경중 십일조가 등장하는 구절들이다.

 

먼저 (창 14:18-20) 은 십일조가 성경 처음으로 등장하는 곳으로서, 살렘왕 멜기세댁이 빵과 포도주를 갖고 나와서 전쟁에서 승리하여 돌아오는 아브라함에게 축복한다. 이에 대해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취한 전리품 중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댁에게 드리는 장면이다. 그래서 어떤이는 이 십일조 제도는 이미 율법이 있기 전부터 존재했다 라고 하면서 이 구절을 들이댄다.

 

허지만 이곳의 십일조는 멜기세댁의 제사장 직분이 레위지파가 아닌 유다 지파로서 영원한 대제사장, 즉 장차 오실 메시야의 모형과 또한 멜기세댁이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그래서 십일조는 분명하게도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적용돼야 한다고 레27장30-33, 신12장5-12절에서 못을 밖고 있기 때문에 여기 아브라함의 십일조는 율법을 받기 이전 이었을 뿐만 아니라 또 십일조는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이나, 상업이나 혹은 경제적으로 얻은 이윤에서는 절대로 될 수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규례로서 가장 바른 십일조는 땅의 소출과 가축 에만 한정 하고 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은 어떤 이유든 간에 오늘날 교회가 주장하는 그러한 십일조가 될 수가 없고 또 하나님 율법의 십일조와는 하등의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이 곳 아브라함의 십일조 이야기는 당대 이웃나라 보편화된 문화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는 개인적 차원의 십일조일 뿐이다. 그래서 율법 전에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십일조가 있었다고 하는 주장은 맞지 않다.^

 

두 번째로 (창28:20-22)의 십일조 내용은 야곱이 하란으로 피난 도중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하시고 나중에 아버지집에 돌아오도록 하시면 자신의 모든 것 중에서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약속한 조건적 내용이다. 그러나 그 후 야곱이 전에 맹세한 대로 십일조를 바쳤다는 기록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리고 하나님은 조건적 값싼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이 곳 야곱의 십일조 이야기도 당대 이웃나라 보편화된 문화의 관습이다

 

 세 번째로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비로소 레위기 27:30-33 십일조 개념을 완전히 명문화 시킨다(레 27:34). 이것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이다. 곧 율법으로서 "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왕상2장3절)(개역개정). 또 느 12:44에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돌릴 것 곧 율법에 정한 대로 거제물과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를 모든 성읍 밭에서 거두어 이 곳간에 쌓게 하였노니...(개정개역).

 

십일조 제도가 정식 규범과 율례으로서 모세 율법에 등장하고, 많은 지파들이 땅의 소산을 얻을수 없는 레위 지파의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의식법이나 시민법과 함께 십일조가 주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핵심은 십일조는 돈이 아니고 '오직 땅에서 나는 곡식과 가축에 대해서만 한정한다' 라고 세부적으로 말한다. 또 바치는 자들의 의지대로 하지 못하기 위해 막대기 밑을 통과하는 가축의 열번째를 뽑아서 드리도록 한다. 그것을 어기는 사람에겐 벌금으로 20%인 가축 두 마리를 더 내도록 하였다.

 

네 번째로 (민수기 18:26) 십일조의 십일조인데 이것은 제1의 십일조이다. 십일조를 받는 레위인도 십일조의 십분의 일을 아론 제사장에게 바친다(민18:26-29). 이것도 역시 돈이 아니고 농산물이다(민18:27).

 

다섯 번째로 (신명기 12:4-19, 신명기 14:22-29, 26:12-15) 에서는 백성들이 하나님이 택하신 그 장소로 십일조를 가져가서 잔치를 베푸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고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인 나그네, 고아, 과부들 뿐만 아니라 자기친족, 종들까지도 그 십일조를 나누어 함께 즐거워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제2의 축제의 십일조라고 할수 있다.

 

그리고 안식년을 기준으로해서 제3년차와 제6년차에는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이웃을 위한 구제금으로도 사용했다. 예를들면, 현재 한국에 점심을 굶는 초등학생만 60만명, 절대 빈곤층은 500만명이 넘는다. 오늘날로 말하면 십일조를 교회에만 집중하지 말고 이같이 가난한 이들에게 함께 하라는 그러한 내용이다(레14:28).

 

더 시야를 널펴보면 세계 70억 인구 가운데 하루세끼 밥을 해결 안되는 인구가 9억 7천만명이나 된다. 이런이들과도 같이 서로 나누라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에 하나님은 복을 주신다고 했다. 이것은 곧 사회보장 복지의 혜택이다. 기부의 천사 지누션 부부와 같이 말이다. 여기클릭참조

 

이것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나눔을 통해 더불어 사는 것을 의미한다. 허지만 세월이 많이 지남에 따라 이 십일조는 점차적으로 변질 되어 갔다.아모스는 사마리아인들의 하나님께 대한 배역행위를 진술하면서 그들의 벧엘제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들은 즐겁기 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여기서 아모스는 십일조와 관련된 그들의 잘못된 신앙을 꼬집는다(아모스 4:4). 그들은 율법 의식법에 명시된 십일조를 통해서 복을 받을수 있다고 생각하고 더 많은 복을 받기 위해 '매 3년마다 드렸던 십일조를 3일에 한 번씩으로 앞당겨 더 많이 시행했다. 더 많은 복을 받아 쌓을곳 없을 정도로 돈 뭉치를 내려 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특심하게 하나님께 더 많은 십일조를 바쳤을지라도 성경대로 바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허사라는것을 아모스는 사람들의 기복적인 십일조를 비웃었다.

 

원래 구약이 말하는 십일조는 성전 제사를 맡은 레위인이나, 과부들이나, 어려운사람들과 함께 나누어먹는 것이었다. 그리고 십일조는 반드시 밭의 소출과 가축만으로 한정 되었다(레27:30, 신12:17, 14:23, 느13:5,12). 그러나 성전이 너무 먼 경우에는 일단 돈으로 바꾸어 가지고 성전에 가서 다시 음식물로 바꾸어 십일조를 드리게 했다(신14:24-26). 따라서 십일조를 내는 사람들은 당연히 '먹거리'를 생산해 내는 농민과 목축업자들만이 한정 되었다. 그 외의 다른 직업인들은 십일조가 면제되었다. 그래서 목수였던 예수님도, 어부였던 제자들도 십일조는 해당 되지 않았다.

 

그러나 성전세는 십일조와는 달리 모든 백성이 납부 의무가 있었다(출30:12-15).그래서 당시 통용되는 돈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은 납부 하셨다(마17:27). 십일조는 구약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족인 제사장들의 생계수단이었기 때문에 필요했지만, 그러나 성전과 제사장이 없는 초대교회에서는 십일조를 일절 시행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십일조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이 없는것이 그 이유이다. 

 

어째든 십일조는 성경대로 하자면 성전과 제사장이 반드시 있어야한다. 왜냐하면 십일조는 분명히 성전에서만 또 제사장을 통해서만 드릴수 있기 때문이다. 성전도 제사장도 없는 초대교회가 이 십일조를 시행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헛되게 하고 무력화 하는것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사도 행전은 이에 대하여 한마디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지난후 주후 4세기에는 교회가 구체적으로 조직화 되면서, 결국 인간들의 돈 욕심이 발동이 돼 성경적이 아닌 인간적 생각으로 다시 십일조 제도를 도입했다. 그래서 그후 거의 중세 1000년 동안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허지만 이때까지도 십일조를 '돈'많큼은 제외시키고 오직 토지소출과 가축에만 거둬들였다.성경적 십일조 대상은 언제나 먹거리로 한정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3세기에 이르러서는 교회의 부패와 타락이 최고조로 달하면서 엄청난 변질이 되다보니 이 십일조가 먹거리를 포함해서 모든 소득으로 확대 되었다. 그때부터 교회는 적극적으로 돈의 꿀맛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시도때도 없이 각종 집회를 열어 돈을 거둬들이니, 돈이 교회마다 넘쳐 심지어 십일조를 보관하는 '십일조 금고' 까지 생기게 되었다.

 

오죽했으면 교회가 돈이 넘치다보니 교회건물은 너무 화려하고, 교회지도자들은 사치에 여념이 없고, 심지어 그 교회담임자는 그 돈많은 교회를 놓치기 않기 위해 자식에 까지 변측세습하다보니, 교회부패는 극에 달해갔고 결국 1079년에 신부들에게 세습 자식을 아예 낳지 못하도록 독신제도 까지 도입하기 이르렀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카톨릭에서는 신부가 독신으로 되어 있는것이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후 초대교회에서도 완전 폐지 되었던 그 십일조 제도가 중세 카톨릭 시대에 다시 활개를 쳐기 시작해서 얄퍅하고도 아주 교묘한 수법으로 특혜와 특권, 기름진 음식, 그리고 위선이라는 거대한 뱃살을 부풀렸던 것이다.

 

허지만 종교개혁 이후에 교회는 국가와 분리 되면서 십일조 왕국인 한국교회만 제외한 대부분 세계 모든 교회가 이 십일조 제도를 공식적으로 완전 폐지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프랑스 혁명 이후(1789)와 1848년에 이 십일조 제도를 모두 철폐하였다. 더 이상 그 십일조 가지고 교회가 교인들에게 사기 칠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폐지한 나라들이 아래와 같다.

 

 

 

 

 

 

 

 

 

 

 

 

 

 

 

 

 

 

 


*영국.......1688년 폐지.

*프랑스.....1789년 폐지.

*독일.......1807년 폐지.

*스페인 ....1841년 폐지.

*아일랜드 ..1869년 폐지.

*스코틀랜드-2000년 폐지.

*스웨덴 ....세금형태로 교회세를 징수 하였으나,  2000년에 공식적으로 폐지.

*이탈리아 ..세금형태로 0.8% 받아 그것을 교회 크기의 비율대로 나눔.

*핀란드 ....시에 따라 다르지만, 세금형태로 교회세를 1%~2.25% 징수.

*스위스 ....공식적으로 십일조를 걷는 곳은 없고, 일부 주에서 2.3%까지 세금형태로 거둠.

*홀랜드 ....십일조 및 각종 헌금을 일절 철폐하고, 교인들의 생활수준에 따라  갹출.

*오스트리아-국가에서 걷는 세금형태(교회세)로 자기 수입의 1%만 냄.

*덴마크 ....시에 따라 차이가 조금 있지만, 국가에서 걷는 세금형태(교회세)로 1%만  냄.

*미국 ......종교와 정치의 분리원칙하에 결코 교회세와 강제적인 십일조를 걷지 않음.
*北美의 연합감리교회, USA침례교, 미국장로교, 아메리카침례교 등 전 교파..........모두 폐지. 
 (다만, 미국의 남침례교회, 오순절교회 등 극히 일부의 교단이 십일조를 하고 있다).
*멕시코 등 라틴아메리카 여러 국가들.......................................... 모두 폐지.

*그리스정교회, 러시아 정교회, 영국국교회(성공회), 루터교회, 동방정교회 등 이들...모두 폐지.
(동방교회는 애초부터 십일조란 개념 자체가 없다) 
 
*전세계의 개신교회들(아시아,중동,중미,아프리카 등의 교회들).....................모두 폐지.
*전세계의 모든 가톨릭교회.................................................... 모두 폐지.
*현재 이스라엘의 유대교조차...................................................모두 폐지.
 


 

 

 

 

 

 

 

 

 

 

 

 

 

여기서 중요한 한가지는 이들 나라들의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은 이 십일조 제도가 신약 교회에서는 비성경적이라는 그 진리를 교리에까지 합의에 도출해 냈다는 것이다. 이들 나라들의 교단과 신학들이 한국교회 신학보다 뒤떨어져서 이같은 합의에 도달했겠느냐는 것이다. 세계 기독교 인구 22억7000만명 가운데 한국 기독교인은 불과 860만명으로서 263분의 1 뿐이 되질 않는다(정부 통계청 발표).

 

특히 한국교회의 신학자들이나 교수들은 대부분 서구나 미국 등에서 신학 공부할 때에 그 각 나라들의 교회예배 참석을 통해서 그 곳 교회들은 '십일조 제도'가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한국 십일조 부조리에 대해 입을 열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끙끙 앓고만 있다. 입을 열었다간 당장 교단으로부터 교수와 목회면직을 동시에 바로 퇴출당하기 때문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알고도 모른척 한다. 그러나 당당하고도 용기 있는 몇몇 신학자들이나 교수, 목회자들은 십일조 제도 폐지를 주장하다가 교단 및 신학교, 교회로부터 퇴출 당한자들이 현재에도 적지 않음을 알수있다.

 

지금 현재 한국교회에서는 교파와 교단을 초월한 모든 교회가 이 십일조 제도가 초교파적으로 정착되어 있다. 교단과 교단, 교파와 교파 사이에는 교리적으로 조그만 차이가 있어도 피투성이가 될정도로 싸운다. 내가속한 장로교만 하드래도 300개교단넘게 싸워 찢어 갈라져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십일조 제도많큼은 모두가 단합하여 한 목소리가 되어 있다. 여기엔 어떤 이의가 없다.

 

이러한 현상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성경 구절이 바로 구약의 말라기 3장8절-10절이다. 본인도 과거에 부흥집회를 통해서 수없이 들었던 말씀이다. 그러나 이 구절은 그 말씀이 기록될 당시의 사회적인 배경과 그 말씀 전후의 유기적인 문맥관계를 고려해서 해석 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특정 구절들만 떼어서 자신들의 신앙관에 애써 합리화 시켰다.

 

말라기 3장8절-9절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덕질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 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곧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한것으로 몰아부쳤다. 이것 때문에 콧물 눈물 흘리며 회개한적이 수없이 많다.

 

그러나 이곳 말3:8-10 절의 바른 해석은 느혜미아서 13장이 자세히 설명한다. 왜냐하면 말라기와 느혜미야는 동시대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 내용중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십일조 도둑은 백성들이 십일조를 하지 않아서 도둑이 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제사장들이 십일조를 몰래 훔쳐 빼돌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둑이라고 하셨던 것이다.

 

바벨론포로에서 돌아온 느혜미야는 레위인과 제사장들에게 명령했다. 백성들이 십일조와 헌물을 가져오면 제사장들은 그것들을 받아서 성전 옆에 있는 성전 창고에 거둬들이라고 했다. 그런데 당시 제사장 엘리야십과 도비야 라는 두 사람이 서로 공모해서 그 성전 창고 바로 옆에 또 다른 자기들의 개인 창고를 만들어 놓고 백성들이 십일조 및 각종 식량과 예물들을 가져오면 그것들을 성전 창고에 넣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개인창고로 계속 빼 돌렸다.

 

그래서 결국 그 성전창고에는 식량이 바닥이 나게 된 것이다. 오늘날 현대 어느교회의 목사가 교회돈을 무수히 착복해서 치부하는 것과 같다.그래서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자 성전 일을 버리고 자기들의 먹고 살길을 찾아 도망가는 일이 발생하였다. 최초로 제사장에 의한 십일조 도둑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내용이 바로 십일조 도둑 사건이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에서는 성도들이 십일조를 한번이라도 못내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했다고 몰아 세우니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십일조를 못내서 도둑이 아니라 제사장 엘리야십과 도비야가 백성들이 바친 십일조를 자기 개인 창고로 빼돌렸기 때문에 도둑 사건이 된 것을 교인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다.하나님은 분명하게도 엘리야쉽과 도비야가 도둑이라고 하는데 목사들은 그것을 바꾸어 교인들을 도둑이라고 몰아세운다. 그리고 그 내용이 자세히 해석되어 있는 느혜미아 13장을 설명하지도 않는다.오히려 그 내용을 교인들이 알아차릴가봐서 전전긍긍한다.얄팍한 성경 지식의 편협자들이다. 하나님의 뜻의 착각의 달인들이다.

 

중세시대에 막대한 십일조 수입을 가지고 갖은 비리를 저질렀던 카톨릭조차도 이제는 회개하고 그 십일조 제도를 버렸는데, 카톨릭을 개혁한 루터와 칼빈의 교리를 따른다는 한국의 개신교가 이제와서 오희려 그 비성경적인 십일조 강조 하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한국교회의 현 상황을 들여다 본다면 십일조와 막대한 헌금수입으로 교회 지도자들은 나날이 사치에 여념이 없다. 그 돈 때문에 교회는 변질 되어 간다.

 

아모스때 남유다와 북 이스라엘은 모두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크게 번영했다. 남쪽엔 10대 웃시야왕 북쪽엔 13대 여로보암2세때이다. 특히 외적인 번영으로 북 이스라엘은 오직 자신들의 일신상의 안일만을 위하여 사치와 방탕을 일삼고(암6:4-6), 세법을 악용하여(암5;11), 가난한자를 착취하며(암2;6), 의인 학대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한국교회는 세계 모든교회가 그렇게 부러워 하는 세계 10대 교회중 1등에서 5등 까지 모두 다 있다. 또 세계에서 유일하게 새벽기도를 통하여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자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다.전체 부동산이 80조원, 연간 헌금 총액이 4조8천억원이나 되는 세계 최고의 메머드급 한국 교회이다.

하루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노숙자는 별관심 없어도 당회장 목사 부인의 생일잔치 한끼에 1천만원을 용감하게 사용하는 통큰 목사가 있는가 하면. 3억5천만원의 벤틀리 최고급승용차 굴리는 목사, 으리 으리한 최고급호텔에 최고급 요리로 식사하면서 회의하는 목사들도 있고, 3천억원 가량의 이태리 대리석으로 짓는 초 호화로운 교회 건물과 수십억원짜리 파이프 오르간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영적 포만감에 젖어있는 교회들이 있다.

그리고 국회의원 300명중 147명이 자칭 크리스천이라고 자부하지만 뇌물 없이 무엇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기이한 나라이기도 하다. 가짜 박사학위로 위안삼는 목회자들, 교단 총회장 선거에 10억~20억의 봉투를 돌리는 목사 들, 자신이 말하는것은 무조건 아멘으로 받아야 한다고 하는 최면을 거는 목사들, 수억원대 년봉에 세금한푼 안내는 목사들, 60~70년대엔 전문직 사기꾼으로 낙인 찍혀 미국비자 아예 나오지 않는 목회자들 , 부흥회 바람잡이로 담임목사와 6:4 비율로 나눠 먹기식 하는 부흥사들, 김일성 김정일에게 뒤질세라 자기 자식새끼들에게 목회직 세습하는 자들(그들의 입에서는 수시로 반공을 내세우지만 실지로는 그 두 부자세습 행동을 따라한다), 모두가 도덕적 불감증의 고질병들이다. 마지막 초침을 향해 달려가는것과 같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마치 사회주의를 주체사상으로 변모시켜 김일성교 신앙으로 만들면서 세습을 정당화하는 이데롤로기로 전락해가는 드라마와 같다. 이들은 모두가 천사의 가면속에서 속이고 속고, 자기의 이속만 탐하는 자들이다.이들은 한국교회를 물질 만능 불랙홀 속으로 85가지 이상이나 된 수 많은 헌금들은 계속 빨아들이고 있다. 이들은 모두가 정신나간 사람처럼 물구나무 서 있고, 깊고 긴 턴널속으로 흐느적 거리며, 비만과 동맥경화에 광대 노릇까지 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어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돌연변이 유전자만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으니 심판때 예수의 발걸음이 어찌 그들은 정상적으로 사열할 수 있겠는가. 신약 성경에는 우리가 돈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헌신한다고 하는 것을 가르치는 구절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수 많은 헌금들로 한국교회 성도들의 혼을 빼놓고 있다

 

한국교회 헌금 종류 85가지 여기클릭


 

성경은 우리 모두가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라고 하는데 엉뚱하게도 세례요한의 가리키는 손가락만을 물끄럼이 쳐다보고 있다. 이 희대의 블랙 코메디를 언제까지 무대에 올릴작정인가. 산상수훈의 설교들은 넘치도록 쏟아 내면서도 산상수훈의 삶은 왜 그리 보여 주지 못하고 있는가. 그렇게도 성도들의 가슴속에 울림과 감동으로 맑은 공기를 언제까지 조금이라도 마시울수 없게 만들작정들인가. 교회 본질의 생명은 나 아닌 그 누구에게라도 연탄 한 장 되어 따스함의 온기를 주는데 말이다.

 

교회개혁자 칼빈은 그의 책에서 예배는 손상되고, 부정한 기복신앙들로 왜곡됨에 따라, 하나님의 거룩한 위엄이 모욕당하고 그의 거룩한 이름이 더렵혀졌으며, 그의 영광이 발아래 짓밟혀 있고 사람들은 자기들의 허구를 숭배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지도자들은 율법의 해석자로서 모세의 자리에 앉아 권위만 주장하며, 무리한 실천을 강요하고 스스로 본을 보이지 않으면서 지식만 팔고 있다고 했다.바로 그러한 삯군이 인도하는 예배가 바로 그릇된 예배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한국교회 일부 목회자들은 수억원대의 연봉, 야구장같은 호화 아파트, 연중 수십차례 선교 여행, 제사장으로 둔갑시킨 자기 우상화로 질주 하면서 끝없는 소유욕으로 자기 자신을 어지럽히고 있다. 교회는 교회대로 도시형 대형 교회와 시골동네 구멍가게 같은 작은교회로 양극화 되어 있고, 교인들은 예배를 즐기기는 하지만 하나님과의 만남은 없고, 정열적이고 감성적인 예배이지만, 연극을 관람하거나 음악회에 참석하거나 감동적인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강의를 듣는것과 별 차이가 없다.

 

교회 성장 위주와 개 교회 주의가 출혈 경쟁적으로 확산되면서 예배가 하나님보다 사람들의 기호 맞추느라 정신이 없고, 예배의 본질이 사실상 헌금으로 이동하여 수많은 헌금들만 발생케 하고 심지어 비성경적인 일천번제나 기복적 감사 헌금들을 범람케 하면서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아예 헌금을 위한 별도의 집회에 축복을 남발하고, 예배가 헌금자들은 즐겁기 하기 위한 패키지 상품으로 진열하고, 그 부흥회 강사들은 중량급 연기자들로서 교인들의 질 좋은 호주머니를 수시로 엿본다. 교회 암흑기에 루터나 칼빈, 쯔빙글리 등 종교 개혁사의 빛나는 별들이 지금 이 시대에 다시 등장 한들 그들의 희대의 블랙 코메디 같은 연출을 그 무대에서 사라지게 할 수 없을 것 같다.

 

신앙은 점이 아니라 선이 되어야 한다. 점을 아무리 많이 찍어도 연결이 되지 않으면 선이 되지 못한다. 주일날 아무리 예배를 많이 드려도 형식화 된 예배, 목적이 바르지 못한 예배, 신령과 진리로 삶이 연결이 되지 않으면 점이 되고 만다. 허울 좋은 그리스도 종교인으로만 끝나고 만다.

 

교회 목회자들은 인본주의적 예측불허의 럭비공식 목회로 하나님의 거룩성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무대를 가로 지를때 그들은 하나님의 옷자락이라도 붙잡으려고 애타겠지만 모두가 헛 수고일뿐이다. 심장의 피가 실 핏줄까지 다다르지 못하니 괴사 진행은 불보듯 뻔하다.

 

따라서 이제 교회는 이 비성경적인 십일조를 통한 막대한 돈을 거둬들이는 것을 중단하고 연보개념으로만 이뤄나가야 한다(고전 9장5절).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서 10장8절에 '제사와 예물과 전제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라고 하였다.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것' 이기 때문이다.

 

현재 십일조를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교파들을 보면 '한국엔 초 교파적으로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특히 성결교는 교인 의무적으로 되어 있고, 오순절 교단, 여호와 증인, 몰몬교, 안식일교등이 십일조 매우 열성적이다. 비정통교파나 정통교파나 이 십일조 앞에서는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낸다. 물론 세계적으로 십일조를 폐지한 나라들의 교회들도 재정적 어려움이 있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러나 십일조는 분명히 성경적이 아니기 때문에 폐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십일조는 교회의 재정적, 현실적인 문제이기전에 성경적으로도 근거가 없고, 세계 기독교 추세와도 역행하는 제도이다. 아니 확실한 성경적 근거가 있다면 처음부터 이런 폐지론이 나올 수도 없었고 전 세계 국가들 역시 아직도 십일조를 시행하고 있었을 것이다.

 

말라기 3장7절-12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실상은 이 '쌓을' 이 단어도 성경 원문에는 없다).

 

본문은 십일조 지지자들과 특히 한국교회를 주름잡았던 부흥사들에 의해 백배, 천배, 만배, 복의 근거 까지 제시하는 성경 구절이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이 구절이 가장 좋은 투자처가 아닌가. 그 누가 골치 아픈 사업을 하겠는가? 자기 재산 십분의 일만 교회에 갖다 내면 돈을 주체 못할정도로 돈 방석에 앉을텐데.... 이같은 매력에 그 누가 눈을 감고 가만히 있겠는가? 돈 불리기 가장 쉬운곳이 교회인데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십일조를 이야기 할 때마다 항상 등장하는 메뉴가 있는데, 그것은 십일조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돈 복을 쌓을곳이 없을만치 넘치도록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넘치도록 돈 복을 주시나 아니주시나 하나님을 시험 까지 해 보라고 한다.만일 하나님게서 십일조를 했는데도 복을 주시지 않는다면 목사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호언장담까지 한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얼마나 허풍이었는가를 성경을 좀더 자세히 연구하면 금방 알수가 있다.그래서 먼저 그 시험 이란 용어가 대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로 하겠다.

 

이러한 발상은 '시험' 이란 단어를 잘못 이해한데서 비롯된다. '시험하다'의 원어에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뜻이 있다. 그것은 히브리어 차라프(???), 나싸(???), 빠한(???) 등이다.

 

{차라프(???)는 (Trial)(헬)굼나시아(gumnasia )(히 5;14,12;1) 시련을 통한 연단} 나타내고,

{나싸(???)는 Temptation (헬) 페이라조(peirazo) 즉 '시험하다(test, tempt)'} 의 뜻이고,

{빠한(???)은(Prove) (헬)도키마조(dokimazw) 즉'마음과 삶으로 증명하다'} 로 구분된다.

 

그래서 말라기 3장 10절의 '시험'은 차라프(???-Trial)도 아니고, 나싸(???-Temptation)도 아니고 오직 빠한(???- "Prove 증명하다")이다. 이같이 시험이란 용어를 잘못 번역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 까지 부추기는 것은 성경 원어의 무지의 소치이다.

 

성경의 다른 모든 여러 곳에서도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고 할 때 '시험' 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히브리어 단어는 나싸(???)(test, tempt)이다. 그러나 말라기 3장10절의 본문의 시험(우베하노니-???????)은 '나를 입증해 보여라' 는 것이다. 히브리어 성경이나 헬라어 성경은 모두 이 두 단어를 명확히 구분하여 번역하고 있지만 우리말 성경은 구분 없이 모두 '시험하다' 라고만 번역함으로서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예로 고후 13장5절에서는,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나쑤-?????) 너희 자신을 살펴보라(위하바하누-?)' 즉 '페이라제테(peirazete)' 와 '도키마제테(dokimazete)' 가 구별되어 사용되고 있다.

위하바하누 이메딤 아템 베에므나 임 나파쉐켐 에트 나쑤

                        eautouV peirazete ei este en th pistei eautouV dokimazete

                                         yourselves, Test if you are in the belief ! yourselves ! Prove

 

인간은 시험 할 수 있으되 하나님은 시험의 대상이 아니다. 말라기 3장 10절의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는 십일조 많이 바치라는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또한 하나님을 시험하면 절대로 안된다.결국 성경에서 하나님을 시험하라는 말씀은 모두가 마음과 삶으로 살피고 입증하라는 말씀이지 하나님을 향하여 흥정하고 시험하라고 부추긴 경우는 한번도 없다. 그렇게 하나님을 시험하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 특히 십일조로 하나님을 시험한다면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자초하는 행위가 된다.

 

그리고 말라기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등을 돌렸던 백성이 이젠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와 관계회복과 메시아 오심에 대한 약속이다. 제사장들과 레위인이 흠이 있고 의롭지 못한 예물을 하나님께 가져왔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예물을 받지 않으셨지만 메시야가 오셔서 그들을 깨끗케 하심으로써 의로운 제물을 드리실 것이기 때문이다(말3장3절). 그 때 하나님게서는 이스라엘의 제물만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열국의 제물도 받으시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면 그가 바로 바른 헌물과 제물을 드리는 온전한 제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도 십일조를 언급하고 있는 구절이 몇군데 있다.마23:23, 눅11:42, 18:12, 히7:1-10 이다.

 

(마23:23, 눅11:42, 18:12) '너희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들을 행하고 저것들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이 말씀도 십일조 열성 지지자들에 의해서 신약시대에도 십일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구절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구약에서와 같이 십일조 실행을 주장하려고 하신 의도가 아니라 형식을 일삼는 바리새인들을 교훈 하려는데 초점이 있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십일조 생활을 보이기 위해서 박화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까지 드렸다. 이것은 향료들인데 보통 이런 것은 밭에 심지 않고 밭으로 사용할 수 없는 땅 한두평이나 혹은 울타리가 있을 때 음식의 향료로 사용하기 위해 거기에 박하와 회향과 근채를 심었다.

 

그런데 그들은 이렇게 조그만한것, 별 가치 없는것, 세부적인 것 까지도 십일조는 하면서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공의(公義)[미쉬파트 ????], 인()=자비(慈悲)[헤쎄드 ???], ()=(信仰)[에문 ???] 즉 바로 종교의 본질을 버린 그 모든 외식을 책망하신 것이다.

 헬라어 원전을 살펴보면----

ouai umin, grammateiV kai farisaioi upokritai, oti apodekatoute to

우아이 휘민 그람마테이스 카이 파리사이오이 휘포크리타 호티 아포데카투테

Woe to you, scribes and Pharisees hypocrites because ye tithe the

화 있을찐저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이여! 외식하는 십일조를

hduosmon kai to anhqon kai to kuminon, kai afh kate ta barutera tou nomou

헤두스몬 카이 토 아네돈 카이 토 쿠미논 카이 아페 카테 타 바루테라 투 노몬

mint and the dill and the cummin and ye{haev}left the heavier things of the law,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버렸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바것들인 율법의

thn krisin kai ton eleon kai thn pistin tauta de edei poihsai kakeina mh afienai

텐 크리신 카이 톤 에레오온 카이 텐 피스틴 타우타 데 에데이 포이에사이 카케이나 메 아페이나이.

j udgment and mercy and -- faith but these things it behoved to do and those not to leave

의와 긍휼과 신뢰는 그러나 이것들도 행해야 했으며 저것들도 버리지 말아야 했다.

 

위의 구절에서 '행하다'의 포이에 사이(poihsai) aorist는 계속. 완료. 반복의 뜻을 갖지 않고 단순히

'과거동작의 때' 그 때만을 나타내는 능동형 부정시제 동사로서 원형 포이에오(poiew)에서 유래했다. 그러니까 계속 반복해서 하라는 것이 아니고 십일조를 시행 했을때의 그 시점만을 지적해서 말씀하고 있는것이다.

 

그리고 에피에나이(afiena)는 '버리다'의 뜻으로 현재 능동 부정과거 시제인데 원형은 에피에미(afihmi)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저것들(카케이나-kakeina)도 즉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도 행했었어야'했지만, 이것들'(타우타-tauta) 즉 의와 긍휼과 신뢰는 행하되 더 중요하게 행했었어야 하는 그 세부지침에 충실의 당위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지 꼭 그렇게 앞으로도 계속 십일조를 행하라는 명령형이 아니다. 왜냐하면 동사가 부정과거 시제로서 그 때 그 행위 동작만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허지만 시기적으로 이 때까지는  예수님도 십일조를 인정하셨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 '시기' 이다. 예수님이 십일조를 인정하시고 당위성을 두신것도 아직 예수님께서 율법의 완성인 십자가 사건 전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십일조 제도의 핵심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지시기 전은 예수님께서도 다른 율법인 할례, 안식일, 규례들도 지키셨다. 이 때는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아직 완성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구약의 율법들이 유효한 시기이며, 십일조에 대해 충실 해야함은 사실이다. 십일조는 의식법(신12:6, 민18:26)적인 문제이고, 성전 예배도 진행 중이었으며, 제사장들과 레위인은 그들의 생활 유지를 위해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 십일조에 필요로 한 시기 였다.

 

율법의 마침인 십자가 사건 전 까지는 예수님도 모든 율법을 지키셨다(갈4장4절). 당연히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 십일조를 강조하셔야 마땅하다. 그러나 결단코 십자가 사건이후엔 십일조를 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성전이 헐리고 제사장이 없어 졌기 때문이다. 십일조가 성립되려면 분명하게 성전과 제사장이 필수 요건이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만에 일으키리라' 이 말씀은 십일조 드리는 것을 하나님께서 스스로 없애 버리신다는 의미이다. 성전이 없으면 레위지파의 제사장 임무도 종결 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십일조 뿐만 아니라 성전도 안식일도 제사장도, 할례도, 제물도, 레위인도 모두 끝난버린것이다. 여기의 사흘만에 다시 일으킬 성전은 부활하신 주님의 몸을 의미한다. 주님의 몸이 부활했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율법의 의식법에 속하는 십일조를 지킨다는 말인가? 예수님이 완성하신 율법을 다시 인간들이 미완성으로 만들겠다는 것인가? 십자가 사건을 무력화 시키겠다는건가?

 

초대교회를 보드래도 일반 헌금에 대한것은 언급되어 있지만 십일조 했다는 기록은 전혀 찾아 볼수가 없다. 그래서 바울도 역시 자비량으로 복음을 전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기 때문에 제자들도 사도들도 초대교회 성도들도 십일조 제도가 유대교의 다른 율법과 함께 폐지 된 것이 당연시 하였다. 그래서 신약의 모든이가 침묵하고 있다.

 

율법이 다 그리스도를 목표로 하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리스도에게서 성취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함께 십일조가 바로 멈췄다. 율법은 그 자체로는 완결되지 않고, 늘 쉼이 없고, 늘 불안해서 참 안식이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목표로 늘 나아가고, 그리스도를 향해서 달리고 결국은 그리스도에게 와서 구약의 모든 약속들이 다 성취 되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동일한 하나님이 그 구원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에게서 모든 의를 이루셨다. 그래서 율법은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과 함께 종지부를 찍었다. 그래서 지금도 유대교의 유대인 조차 생활의 법으로 삼았던 그 율법의 십일조를 시행할 수도 없고 또 시행하지도 않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믿는자들이 다른제도들은 그대로 놔두고 유독 십일조만을 계속 시행 한단 말인가.

 

따라서 한국교회가 유대교의 율법의 하나였던 그 십일조를 다시 강요하는 행위는 예수의 십자가를 무르고 다시 구약으로 돌아가서 돌성전도 세우고, 안식일도 지키고, 제사도 지내고, 할례도 지키고, 절기도 지키려고 하는 의도와 전혀 다를바 없다. 교회 운영에 대한 돈은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도 목적이 되는 경우가 대다수 현재 교회의 실정이다. 그 수단을 정당화 해서 가르치는 목회자들 때문에 오늘의 교회가 바로 서지 못하는 이유중에 하나이다. 인간의 생명과 영혼은 보이지 않고 집회 참석 인원 머릿수에 비춰 돈만 계산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사람들의 머릿수가 아니라 성도들의 가슴속 심장 박동수를 세어야 된다. 막대한 십일조와 헌금에 눈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사람들의 숫자만 계산하고, 정부에서조차도 동네 구멍가게를 살리기 위해 대형마트 버스 돌리는 것을 폐지 시?는데, 더 모범을 보여야 할 교회가 대형 버스를 이용해 이 동네 저 동에 쑤시고 헤집고 돌아 다니면서 작은 교회교인들까지 집어 삼키고, 또 대형 교회들은 지방 곳곳에 지성전을 만들어 놓고 목회자 개인 목회 성공의 자랑거리로 힘을 쏟고, 대신 성도들은 빈사상태와 식물성도로 전락해 가고 식은 땀을 흘리고 있다. 정 반대의 레일위로 달려가는 열차와 다름없는 교회들로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에 자그만 교회들은 자기 동네에 대형교회들이 들어 설때마다 공포감과 비명소리만 가득하다. 서울의 서초동에 어느 S대형교회가 새로 건축해 들어서니 그 주위의 작은교회 수백개나 무너져 내린다.지금 한국교회는 르네쌍스가 필요하다. 애초 성도들이 생각하는 교회의 희망은 교회가 성도들의 안식처였다. 그래서 성도들의 가슴은 뛰었고, 성도들의 교회사랑 열정은 폭발하듯해서 비바람과 폭풍이 몰아칠때엔 교회는 언제나 우산이 되어주곤 했다.

 

목회자는 목회를 자기의 생명과도 같은 가치와 도덕성과 자기 신앙의 인격을 나이테처럼 쌓아 소중한 가치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 화장을 고친다고해서 달라지는건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한국교회는 부활을 꾀해야 한다. 제도적으로 시스템을 새로운 정비가 필요하다. 하나님이 디자인 하신 성경적 교회 본질이 회복 되어야 한다.순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님은 돈에 대해서 부자가 천국가는 것이 밧줄(낙타가 아니고-칼빈의 말)이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바울도 돈은 일만악의 뿌리라고 말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깨끗해지려면 우선 돈줄부터 끊어야 한다. 그래서 천주교는 지금도 연보라고 한다. 연보는 자기 재물을 내어 남을 도와주는 것으로 일종의 구제금에 더 가깝다. 그래서 고린도 교인들은 연보를 거둬서 바울에게 내 놓았다. 교인들이 십시일반으로 교회 운영비나 교회일을 하는 자들을 위해 내어 놓는 것이 연보이다.

 

고후 8장13절에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케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케 하려 함이라 했다. 한국에는 5만 교회, 15만의 목회자, 860만의 성도(어떤이는 1200만이라고 하지만 이 숫자는 환상의 꿈에서 피어나는 신기루일뿐이다) 가운데 아직도 미자립교회가 36,000개나 된다. 더 나아가 세계인구중 하루세끼 식사 해결이 안된숫자가 70억 가운데 9억7천만명이나 된다. 하나님이 요구하는것은 율법보다 더 중요한 '의와 긍휼과 신'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된다고 오늘도 말씀하신다.

 

새 언약의 완성이신 예수님께서 모든 율법의 의식법인 십일조를 포함해서 모두 완성 하셨다. 은혜 받은 자는 그 은혜를 나누는 차원에서 사랑의 연보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십일조를 부지런히 잘 내서 백배 천배 만배 복받으라고 하는 자, 또 십일조 영웅 록펠러의 허황된 이야기를 들려주며 십일조 했더니 복을 받아 돈 방석에 앉아 누루고 후대 자자손손 복받고 아주 잘 산다고 가르치는 자, 그런데 록펠러 그가 얼마나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행할 수 없는 악질적인 행동을 했는지 그에 대해 조금만 살펴봐도 금방 알수 있다. 록펠러 그 이면에 숨겨진 악한 행동이다.  

록펠러가  선행을 얼마나 많이 하든, 그가 재산을 쌓기위해서 저지른 악행을 보상할수는 없다.  

 - 루즈벨트 대통령의 말-

 

 

현대 교회가 십일조를 위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동영상이다.

 

                                                        

록펠러의 부정행위 여기 클릭


일조를 안하면 저주를 받는다며 겁을 주는 자들이나, 심지어 공개 설교 시간에 십일조를 하지 않는 자는 구원까지 받지 못한다며 으름장을 놓는 자들, 또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교회 내의 봉사직인 직분을 제한하고 제외시키며 믿음 없는 자들이라고 낙인 찍는 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무너뜨리려는 사탄적 행위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웃을 향한 의와 인과 신이 십일조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셨음에도(마23:23) 목회자들은 오희려 반대로 십일조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예수께서는'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하셨는데 오희려 교회 목회자들은 십일조와 부담스러운 헌금으로 무거운 멍에로 짐을 씌우고 있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기복신앙으로 중병이 들어있다. 복음을 듣고 교회 등록과 동시에 신자들은 교회 조직에 촘촘히 스며 있는 기복주의적 그물망 속으로 무심코 진입해서 거대한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그 공동체의 멤버가 된 그들'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각종 힘겨운 헌금과 얽어매는 교회제도로 인하여 빛이 바랜다. 교회마다 쏟아내는 정책 메뉴들, 목회자들의 야심 찬 변덕을 감당하면서 오늘까지 지탱왔다는 것이 경이롭다. 신자들은 '신앙의 본질'을 버리고 '기복 전문인' 이 되기로 선회 한지 오래고, 목사들은 돈 생산에 매달릴 따름이다.

 

맘몬이란 배타적 울타리 안에 스스로 갇혀 물량주의의 일그러진 모습으로 진실된 신앙에서 멀리 떠나 있다. 91년전 이 땅의 교회들은 호화로운 대형 건물이 아니라 불타 버린 47개 예배당의 폐허에서 '빛과 소금' 의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임박한 예수 재림의 9회말과 다름이 없다. 목회자들은 자신의 마지막 타석의 무리한 스윙으로 자신들의 목회게임을 승부처로 뒤집으려는 그런 부담스런 행동을 거침없이 오늘도 저질른다. 교회건물 짓는데 제1,2 금융권 은행 빚 10조원, 한달 이자만도 600억원.아프리카 전체 인구 6억8천만명중 1/2인 3억4천만명이 한달간 먹을양식을 생명없는 흙속에 던진다. 몸 속에 '분열의 유전자, 왜곡의 DNA, 허영의 염색체' 라도 지니지 않고서야 이렇게 까지 빗나갈 수는 없는 것이다.

 

거목은 가만 있는데 바람 소리만 요란하는 짓들이다. 20세기 교회 문맹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말했지만, 21세기 문맹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좀더 긴 호홉을 가질 필요가 있다.개혁은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개혁은 진리의 혁명이다. 한국교회는 진리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오늘의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본인들은 회개하지 않으면서 다른이에게 회개하라고 큰 소리 친다. 요시야왕은 율법책의 말씀을 듣고 애통하며 자기 옷을 ?고 유대민족의 죄과를 통회 했던 것처럼 한국교회에서도 하나님의 바른 진리의 생명의 말씀을 찾아야 한다.

 

나침반은 아무리 돌려도 북쪽을 가리키는 바늘이 언제나 북극성을 향하고 있다.변화를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목회자 자신의 지향점이 바뀌야 한다. 반딧불이 짙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이유가 자기 안에 빛을 간직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온전히 따뜻하게 할 수는 없지만 마음의 눈으로 세상에 온기를 나눌수 있게 해야 한다. 촛불을 세상을 향해 밝히자 하기 보다는 목회자 자신들의 마음속에 켜야 한다. 걸레는 다른 사물에 묻어 있는 더러움을 닦아내게 위해 자신의 살을 헌다. 목회자는 그 비인간화의 속살을 고민 해야된다.

 

성직자는 원래 강하다. 그들이 강한 것은 잃을게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땅도, 아파트도, 직장 의자도 없다. 신부와 승려에겐 가족도 없다. 스님은 쇠고기도 먹지 않는다. 버릴 것도 없는데 그나마 남은 육신마저 고행으로 가볍게 만든다. 역사적으로 성직자들은 가벼운 몸과 정신으로 세속의 울타리를 훌쩍 뛰어 넘곤 했다. 로마의 사자밥이 되면서도 굴하지 않았다. 카톨릭 신자들은 대원군의 칼날에 목을 바쳤다.

 

그래서 성직자는 그렇게 강하기 때문에 그들이 움직이면 세속이 긴장하고 떤다. 세상이 얼마나 흔들릴지 세상 사람들은 숨 죽인다. 심장이 두근 거린다. 그러나 안락에 빠진 목회자, 성추행하는 목회자, 부패한 목회자, 연봉이 몇억 혹은 몇십억 받는 자들이 이중과세라고 해서 세금도 안내려는 목회자, 고상한 깃발 아래 어김없이 광기(狂氣) 에 편승해 오면서 장이 서게 하고 좌판을 깔고 판돈을 챙기는 목회자, 성경적이 아닌 십일조를 성경적인 것처럼 꾸며대며 겁을 주며 돈 없어 십일조 못하는 성도들을 왕따 시키는 위선적인 목회자, 그러한 목회자들 앞에는 어느 누구도 미동도 하지 않는다.

 

마5:18 에서 예수님께서는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하셨고,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그것을 다 이루시었고, 다 성취 하셨다(요19:30).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뤄셨기 때문에 십자가 이후에는 구원의 길로서 의식법인 십일조 기능은 완전히 종결 되었다. 구약의 피 제사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희생제사에 비하면 그림자요 예표였고 그리스도의 제사는 실체요 그 원형이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구약의 모든 제도들이 그림자 라고 했다.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다. 구약의 모든 제도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므로 없어져 버렸다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하기 때문에 히브리서에서는 모세와 그리스도 관계를 피조물과 창조주의 관계로 묘사 하면서 율법의 기능 종결에 대하여 바울보다 더 과격하게 말한다(히7장19절). 그리스도의 단번에 드린 희생이 율법의 모든 일점일획까지도 다 이루셨기 때문에(히7장27절), 또 옛 계명이 무익하므로 율법을 폐하셨고(히7장18절), 바울 역시 갈5:4에서 '율법으로 의롭다 하려는자들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다'고 까지 말했다.

 

종말론적인 성취와 폐지, 그리스도에게서 모든 것이 성취되므로 구약의 모든 제도들이 폐지된 것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의 영화에서 실제가 됐다.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의 영화로서 교회가 이루어지면서 실제가 된 것이다. 옛 언약의 약속과 선지자의 증거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실현되고 종말론적으로 성취됐다. 옛 질서는 해소되고 제거되고 없어져 버려서 전혀 새로운것이 생긴 것이다. 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지막으로서 그리스도가 율법을 다 지키고 성취하므로 십일조까지 폐쇄해 버렸다. 그리스도가 성취 했을 뿐만 아니라 율법의 모든 정죄를 다 담당 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십일조)이 그리스도를 믿는자들에게서 적용되지 않는다.

 

대신 빚을 다 갚아 주었기 때문에 빚쟁이의 빚 메이는데서 끝났음과 마찬가지이다. 모든 율법(십일조)이 종결되고 그 세력이 파괴 돼서 더 이상 그것이 나에게 구속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완전 무력화 돼 버렸다. 그래서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할례받을 필요가 없고, 안식일 지킬필요가 없고, 절기를 지킬 필요가 없고, 의식법에 포함된 십일조까지 지킬필요가 없는 것이다. 옛 언약은 새 언약이 옴으로 자동 폐기 되었다. 전자 제품도 신제품이 나오면 옛날 제품은 모두 폐기하기 마련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십일조)의 마침이고(롬10장4절) 완성인데도, 옛언약의 백성들은 제사 제도를 즉 의식법인 십일조등을 한국교회처럼 계속 할 것이기 때문에 이 제도를 하나님은 성전 휘장을 위에서 아래로 ?고 자신의 심장을 내 보이셔서 물리적 방법으로 폐지 하셨다.그래도 성전이 있는한 레위 제사가 계속 될 것이기 때문에 AD 70년에 로마의 디도 장군을 들어 성전을 옹호하던 유대인 110만명 이상을 죽여버렸고 예루살렘 성전을 완전히 훼파시켰다. 그 후 성전 재건은 아직도 이뤄지지 못했고 또 시온주의 결과로 유대인들이 2차 대전후 팔레스틴에 귀환하여 이스라엘을 세웠어도 아직도 성전많큼은 세울수가 없다.

 

성전만 아니라 제사장 가문을 완전히 허물어 버리심으로 지금까지도 사독의 뒤를 이은 제사장의 후예를 확인해 낼 길이 없다. 그들의 성씨가 코헨(???) 이란 사람을 찾아 제사장으로 세울 수도 있다. 왜냐하면 코헨은(???)히브리어로 제사장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헨(???)이라는 성씨를 가진 자도 찾을 길이 없다.이 십자가 완성 때문에 한국만 제외한 세계 모든 교회가 이 사실을 깨닫고 십일조를 오래전에 완전 폐지하였다. 한국 교회는 속히 개혁과 회복이 필요하다. 가장 시급한 일이 이 십일조제도를 중단 해야 한다. 그리고 맘몬 우상을 배격해야 한다. 신앙은 언제나 윤리와 어깨를 같이 한다. 한국 교회 모든 성도들이 세상과 말씀에 정직하여야 한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가시밭에 휩쌓여 상처투성 일지라도 필히 개혁을 이뤄내야 산다. 과거 종교 개혁자들에게도 가시가 있었기에, 그 가시가 종교개혁을 이뤄냈다. 가시에 찔리면 고통스럽지만 그럴수록 교회는 든든히 바르게 서 간다. 동풍이 불면 서쪽 가시에 찔리고, 서풍이 불면 동쪽 가시에 찔리고, 가시에 찔리울수록 교회가 진리의 빛을 더 발하게 되는 것은 개혁이라는 치료약을, 우리 영혼에 흘러 들어오게 하는 짧은 주사 바늘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개혁의 묘판이 속이 재 편성 되어야 한다. 훗날 이 세상의 아름다운 소풍을 마치고 하늘나라로 돌아가서 그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2013-08-13 20:14 | 출처 : 세계교회가 시행치 않는 한국교회만의 이상한 십일조 제도

logos3968 | 답변 1 | 채택률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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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독실한 그리스도인은 십일조를 드립니다. 다만 교파에 따라 십일조를 강조하는 것은 좀 다르지요.
2013-08-22 13:38 | 출처 : 본인작성

울뚱이이뽀(sagi***********) | 답변 101 | 채택률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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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그러합니다.돈모아야죠.

2013-08-26 14:59 | 출처 : 본인작성

ㅋㅋㅋ(mj***) | 답변 3 | 채택률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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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답변에 어떤 분들이 답변을 주셨는지 안 나와 있어 크게 도움이 안되는거 같습니다. 한분정도 알 수 있는 듯 목사님...저는 믿음 안조은 성도! 저는 제 믿음 이 안조아 그런지 성도들 중에 믿지 않는 남편의 월급의 십일조를 내고 복 받았다고 당신도 해서 복 받으라 강제하는 사람도 있고(주로 직분자) 직접 목사님께서 헌금 왜 안하냐고 그러시는분 저 봤습니다. 이름 없이 헌금 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헌금도 이름 안적음 안되게끔하는 곳도 있더라고요! ㅎ  

저는 구원을 못 받았는지

그 복을 받을 그릇이 못 되나봅니다.

그래서 이제 안 다닐려고요!

예수님께서 죄로 부터 해방 시켜주셨다는데

율법인지 뭔지 여튼 못 지켜서 교회 못 다니겠어요

돈도 없어서...

돈의 종이라....

 

십일조 설교 많이 하는 교회

주님은 십일조 없음 일도 못하시나?

이런 생각 듭니다.

주님은 그런 분이시구나! 이런 생각!

설교 말씀에 주님은 돈 없이도 가능하다고 하시지만

행동이라해야 하나?

상황이라 해야하나?

여튼 헌금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시는 분으로 느껴집니다. ㅠ.ㅠ

 

울신랑 돈돈 그러는데

교회가 더 돈돈 그려서

전도도 못하겠어요!ㅠ.ㅠ

 

 

예전에 전도하면 나는 사단의 종이다!

그런 친구들이 있었는데

이젠 그 친구들이 왜 그런말을 했는지

이해가 됩니다.ㅠ.ㅠ

2013-09-29 08:55 | 출처 : 본인작성

I진리의 나팔수I | 답변 81 | 채택률 12.5%

활동분야 : 천주교 (19위) | 종교 (47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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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치 않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이나 근자에 개신교의 부흥이 일어나고 있는 남아메리카의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나 아시아의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필립핀 등에서도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일부 몰지각한 불신자들과 천주교신자들이 개신교의 십일조헌금을 구약시대에 폐하여진 율법을 교인들에게 강요하여 교인들을 착취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 신앙과 성경의 기본도 잘 모르는 자들의 비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십일조헌금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십일조에 관한 성경의 교훈은 수없이 많습니다

십일조에 대한 구절은 60여군데 됩니다

십일조에 관한 교훈이 27군데 이와 비슷한 말씀... 십분의 일을 바치는데 관한 교훈도 37군데 정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십일조는 구약의 율법으로 신약에 와서 폐하여 졌다고 주장하며 신약의 예수님께서는 십일조를 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고 하는데 아닙니다

 

분명 예수님은 마태복음 23:23에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하셨고

마가복음 12:17 에서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세금)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십일조)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구약 말라기 3:8에 보면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십일조)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했습니다

 

어떤 분은 십일조는 구약의 율법이니까,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십일조는 율법 이전에 “축복의 언약”의 말씀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기 전, 이미 4000~5000년 전에 멜기세덱(예수님의 모형)에게 수익의 십일조를 드리며, 복 빎을(祝福) 받았다고 했습니다.(히7:2,4,7,9)

 

구약의 율법이라고 지킬 필요가 없다면 10계명에, “나 외에 다른 신 섬기지 말라, 우상 숭배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라는 율법도 다 버려야 합니까?

 

구약의 율법에는 영구불변하는 조항이 있고 신약에 와서 개정되고 대체된 조항이 있으며 폐하여 진 조항이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 의식법이나 절기와 부정한 음식을 정한 법 같은 것은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제물이 되어 영원한 구속사를 완성하심으로 해서 다시는 번거롭게 매번 짐승을 잡아 제사드리는 의식을 행할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제사법들은 폐하여 진 것이며 구약의 유대인들이 지키던 명절 즉 유월절이나 안식일 수장절 초실절 오순절 무교절 같은 것들은 부활절, 주일, 추수감사절, 맥추감사절, 성령강림절, 성만찬 등으로 변경되고 대체된 것입니다 또한 할레같은 성별의식은 세례(침례)로 대체된 것입니다

그리고 수전절(성전탈환기념)과 부림절(전쟁승전기념) 나팔절(신년속죄제)같은 것은 폐하여 진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의 십일조에 관한 계명은 신약에 와서 예수님이 해야 되는 것으로 말씀 하셨기 때문에 여전히 유효한 조항이며 오히려 헌금에 관하여서는 예수님께서 최선을 다하여 온 힘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가장 좋은 것을 풍성히 드릴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더욱 강화된 조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막12장41-44절에서 예수님은 성전 헌금궤에 자기의 생활비전부를 넣은 과부의 믿음을 높이 평가하심)

 

십일조는 하나님나라의 백성된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생활 규범으로 구약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값없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의심없이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상급과 축복의 언약의 말씀인 것입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주일성수 하거나 십일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정해주신 생활규범, 일주일의 첫날을 하나님께 드리고, 모든 수입의 10분의 1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를 축복하시고 상을 주시기 위하여 세우신 언약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 십일조의 원칙은 순수한 소득(돈이나 어떤 물질,열매)의 10%를 성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개신교인들은 어느 나라건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으로 믿고 신봉하고 따르고 있습니다... 성경말씀만을 절대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수십군데에서 십일조헌금을 명하고 있고 또 십일조헌금에 대한 축복의 언약을 말씀을 주시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일조헌금을 잘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결단에 의해서 할 일이고 이것을 강요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십일조는 조건이 아닙니다 자발적인 순종입니다

어떤 사람은 십일조헌금을 축복받는 조건으로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잘못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신앙생활을 철저히 하면서 십일조헌금을 잘하는 사람을 어여삐 보시고 말라기 3:10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말씀하셨지마는 그러나 십일조헌금을 하는 사람은 1000원내고 만원을 받기 위한 심정으로 바쳐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어떤 조건을 걸고 바라고 바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자녀된 자로서 받은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크기 때문에 아무 조건을 바라지 않고 마땅히 바칠 것을 바친다고 하는 심정으로 바치는 것이 십일조헌금 입니다

 

이것은 또한 이 세상만물과 내가 가진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행위요 또한 나는 하나님의 것을 위탁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쓰고 관리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지니고 있는 청기기일 뿐임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행위이기도 한 것입니다

 

개신교회 누구도 십일조헌금을 강요하지 않습니다(혹 사이비 이단교나 개척교회에서 우둔한 교역자들이 십일조를 강요하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마는 대체로 자리가 잡혀있는 교회는 개별적으로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성경의 말씀을 말씀대로 가르치고 있는 것 뿐이지요

십일조헌금을 하지 않으면서 수십년간 교회를 다녀도 이것을 탓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신앙은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것이지요

 

우리가 육적으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세금을 나라에 다 바치지요?

이와같이 기독교인들은 영적으로 하나님나라의 백성된 것을 감사하면서 자발적으로 영의 나라의 지성소인 교회에 영적세금( 십일조)을 바쳐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발적인 순종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억지로 마자못해 바치는 헌금은 기뻐 받으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십일조 헌금은 강요대상이 아닙니다

그냥 교회 다녀도 상관 없습니다 누가 강요해서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 개인의 믿음과 자발적인 결단에 의해서 드려지는 것이 헌금입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네 보물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셨지마는 정말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주의몸된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역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원한다면 어찌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내 귀중한 것을 바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믿음이 좋은 사람은 십일조헌금이 아니라 자기의 생명까지라도 바치는 것도 아까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유럽과 미국에서는 벌써 십일조가 폐하여 졌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유럽의 기독교국가에서는 종교세를 걷는 나라들이 여럿 있는데 이런 나라들에서는 신자들이 헌금을 안해도 교회 운영비뿐 아니라 교역자들의 활동비까지도 나라에서 다 대 주고 있기 때문에 별로 교회에서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강조하여 가르치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교인들은 주일날 예배 때에 주일헌금을 하고 감사헌금을 하며 또한 신앙이 좋은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십일조헌금도 보충해서 다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십일조헌금의 사람으로 록펠러나 카네기 같은 사람들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이 나중에는 십의일조가 아니라 십의 삼조까지도 교회를 위하여 헌금 했으며 그 밖에도 사회복지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헌금을 했는지 모릅니다

 

오늘날 미국과 유럽의 교회가 강단에서 십일조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의 자유주의 신학을 우리가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날 구미의 교회가 자유신학에 물들어서 성경말씀을 바로 믿지않고 제멋대로 인간의 입에 맞게 변질시켜 예수님의 복음의 생명력을 잃어버린 결과 날로 날로 교회가 쇠퇴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준 모교회이지만 현재 세상의 인본주의와 적당히 타협하여 세속화되어있는 그들의 잘못된 신앙, 변질된 신앙을 따르면 안됩니다 그러면 우리도 그들과 같은 꼴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십일조헌금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에(말3:8) 하.나님의 몸된 교회에 바치는 것이 원칙입니다

구약에도 보면 십일조헌금을 하나님의 성전의 제사장에게 바치는 것이 원칙처럼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금고지서를 받으면 그 세금내야 할 돈을 내 임의로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갖다 줄 수 있습니까? 그건 인정이 안되고 세무서에 갔다가 내야 인정이 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지성소인 몸된 교회에 내야 하는 것이고 자신이 등록하고 신앙생활하는 교회에 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몸된 교회에 헌금을 하게 되면 교회에서는 제직회의를 열어서 교회중직들이 예산을 편성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전도사업,교육사업.구제봉사 사업등에 그 헌금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십일조문제는 구원의 문제와는 별개의 것입니다

또한 강제적인 조항도 아닙니다 성경은 십일조를 구원의 문제와 연계시켜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권장사항이요 상급의 문제인 것입니다

 

십일조에 대한 성경의 말씀은 아래와 같습니다

십일조와 같은 십분의 일을 바치라는 말씀은 생략했습니다

빨간 글씨는 십일조에 관한 구약과 신약의 대표적인 말씀이라 할 수 있기에 색깔을 달리 해서 분별 했습니다

 

구약

레위기 27:31 또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십일조를 무르려면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할 것이요

레위기 27:32 모든 소나 양의 십일조는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 번째의 것마다 여호와의 성물이 되리라

민수기 18:21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민수기 18:24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므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민수기 18:26 너는 레위인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아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민수기 18:28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모든 것의 십일조 중에서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여호와께 드린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로 돌리되

신명기 12:6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제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의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신명기 12:11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으로 내가 명령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

신명기 12:17 너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와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과 네 서원을 갚는 예물과 네 낙헌 예물과 네 손의 거제물은 네 각 성에서 먹지 말고

신명기 14:22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신명기 14:23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신명기 26:12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사무엘상 8:15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역대하 31:5 왕의 명령이 내리자 곧 이스라엘 자손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첫 열매들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으며

역대하 31:6 유다 여러 성읍에 사는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들도 소와 양의 십일조를 가져왔고 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릴 성물의 십일조를 가져왔으며 그것을 쌓아 여러 더미를 이루었는데

역대하 31:12 성심으로 그 예물과 십일조와 구별한 물건들을 갖다 두고 레위 사람 고나냐가 그 일의 책임자가 되고 그의 아우 시므이는 부책임자가 되며

느헤미야 10:37 또 처음 익은 밀의 가루와 거제물과 각종 과목의 열매와 새 포도주와 기름을 제사장들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의 여러 방에 두고 또 우리 산물의 십일조를 레위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였나니 이 레위 사람들은(일반생계직업을 갖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하며 하나님의 성전을 운영하는 족속)우리의 모든 성읍에서 산물의 십일조를 받는 자임이며

느헤미야 10:38 레위 사람들이 십일조를 받을 때에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 한 사람이 함께 있을 것이요 레위 사람들은 그 십일조의 십분의 일을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 곳간의 여러 방에 두되

느헤미야 13:5 도비야를 위하여 한 큰 방을 만들었으니 그 방은 원래 소제물과 유향과 그릇과 또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십일조로 주는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또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두는 곳이라

느헤미야 13:12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아모스 4:4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느헤미야 12:44 그 날에 사람을 세워 곳간을 맡기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돌릴 것 곧 율법에 정한 대로 거제물과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를 모든 성읍 밭에서 거두어 이 곳간에 쌓게 하였노니 이는 유다 사람이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기 때문이라

말라기 3:8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말라기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신약

마태복음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누가복음 11: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태복음 22:21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마가복음 12:17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누가복음 20:25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013-10-09 14:21 | 출처 : 본인작성

렉스(ghk****) | 답변 7 | 채택률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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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으시는 모든 형제 자매님들게.....십일조는 구약의 법이죠?신약은 율법을 폐햇다고 말하며,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려고 오셧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자..... 율법의 발로로 십일조를 거론한다면, 먼저 할례를 받으시죠......할례를 받아야 십일조의 자격을, 선민으로써의 자격을, 구비하는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잇으니까요! 어째서 한가지만 지키고 다른것을 폐하겟습니까? 그리고 복음의 관점으로 기쁨과 감사의 발로로 드려지는 십일조(헌금) 를거론하신다면 이건 연보여야 합니다 . 구원과 은혜에 감사해서 드려야할 감사의 표현입니다. 몰론 자발적이어야 하며, 진정성과 감사함이 깃들어 있어야합니다.(고린도 후서 9장7절) 한국의 일부목회자님들께 부탁드립니다. 복음으로 완성되서 폐지된 율법적 십일조를 강요하지 말아주시고, 진정한 복음으로 성도들을 감화시켜주셔서 감사함으로 드려지는 자발적으로드려지는 헌금과 헌물이 될수 잇게 노력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한 헌금을 하나님께서는 기쁘시게 받아주실것입니다. 물론 목회자님들의 노고와 주님께대한 충성심을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많은 목회자님들의 수고를 그리고 그 좋은결실을 저는 잘알고 있습니다.그리고 어려움도 말입니다............ 아무튼 구약의 율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엇고 더욱더 온전해지지 않앗습니까?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음욕을품지말라는 말씀으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미움을 품지 말라는 말씀으로....확장 완성되엇죠, 이사실을 부인할 그리스도 인들은 없을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의 일부또는 여러 교회들은 이부분의 계명은  완성되지는 않은듯 합니다, 물론 아직 세상안에 있는 교회이니 주님의 일을 하는데 돈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겟지만요.....하지만 그것이 성도들이 교회를 등지는 시험이나 이유가 되어서는 않되겟으며 구원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어서는 않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주께서 피흘려 이루신 구원을 그 폐하여진율법 한계명 으로 구원전체를 흔들어놓으시겟습니까? 저는 묻고 싶습니다......그리고 저는 이미 다른글에서 한자매가 교회를  등진것을 글로 보앗습니다. 참으로 슬픈 일이며 ,가슴아픈 일입니다!......제발 더이상 이문제로 교회를 떠나는 영혼이 없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그리고 떠나신 자매가 돌아오시길 참으로 기대합니다.

2013-10-10 04:37 | 출처 : 본인작성

짝(sanb******) | 답변 1 | 채택률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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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일조나 헌금은 육신을 가진 인간, 물질(형체)이라는 세상에서 존재하는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입니다. 십일조가 잘 못 됐든 아니든 하나님께서 형제님이 드린 것을 모르시지 않으십니다.  먼저 십일조에 동의하지 않으시면 하지 마십시오. 그렇지만 하나님을 알기 위해 힘써 교회에 나가 믿음을 키우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마지막까지 십일조든 헌금이든 안 하셔도 됩니다. 헌금을 하지 안해서 뭐라 하면 간섭하고 지적하지 않는 교회 많고 많으니 옮기십시오.

 

   자신이 소유하게 된 물질이 창조주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인함인가를 믿든 안 믿든 우선,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100만원, 천만원, 1억이라는 돈(물질)이 하나님께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100세에 나은 귀한 아들을 바치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아들이 하나님께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다. 성경에 가난한 과부가 하루 먹을 양식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루를 굶주려 지냈는데 그 과부가 성전 건물 헌금함에 넣은 그 돈이 하나님께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부인하고 부인할지라도 물질속에서 벗어나서는 살기 힘든 나약한 존재인 인간은 그 물질 속에(돈이든 어떤거든) 자신의 마음과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 즉 첫번째의 사랑, 귀한 사랑을 원하고 또 원합니다. 하나님 자신이 그에게 우선이 되기를 원하고 또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정성과 사랑과 충성스런 마음을 항상 받으시거나 확인하시길 원하는 분이십니다. 형제님의 귀히 여기는 물질속에 형제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형제님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기쁠때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그리고 썩어빠진 교회 목사나 관리자들이 자기를 위해 헌금을 남용하고 훔쳐 먹어도 형제님이 드린 예물은 하나님이 모두 아시고 잊지 않으시니 너무 심히 분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돌덩어리 부처가 아닙니다. 그리고 형제님이 그들을 미워하는 것보다 하나님은 더 미워하시며, 그들을 이 세상 사악한 인간들 중에서 뱀의 자식이라고 욕할 정도로 제일 증오하고 미워하는 분이시니 이를 아시기 바랍니다. 그 목회자 놈들이 형제가 드린 예물을 가지고 좋은 고기로 자기 배를 채우고 좋은 옷과 부를 누릴지라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예를 들어 형제님이 귀한 송아지를 하나님께 받쳤는데 돼지 같은 목회자놈이 제사 드리기 전에 삶고 있는 솥에서 좋은 고깃덩어리 일부를 건져내어 더러운 목 구멍에 집어 넣었어도 주 하나님께서는 모두 아시고 모두 받으셨다

"그래, 너가 받친 예물을 모두 받았느리라" 말씀하시니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형제님께 복이 있습니다. 형제님이 필요한 것을 하나님이 아시고 좋은 것으로 주시길 계획하십니다.

 

  가장 어려운 믿음 생활 중에 하나인데 이 세상에 마음을 두지 마십시오. 이 세상은 가나안(천국)을 가기 위한 광야 생활입니다. 그저 해가 밝으면 가나안(천국)을 향해 일어서 걷고 주님 주신 일용한 양식 먹고 해가 지면 주님 보호아래 자는 겁니다.

 

  하나님은 돌덩어리 부처가 아니시면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우리 인간이 계획한 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닐지라도 선에 어긋나지 않으며 선을 이루기에 합당하면 그 형식을 하나님이 즐겨 받으십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가진 분이시며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 지금 형제님 주위에 계시니 문을(마음의 문)열고 부르십시오

2013-10-14 22:55 | 출처 : 본인작성




제삼자 (121.♡.126.81) 2013-11-05 (화) 08:26

세계의 모든 예수교 종파마다, 세계의 모든 교회마다,  세계의 모든 예수쟁이마다, 모든 시대마다......
한 가지도 일치하지 못하고 구구 각색으로 다르고, 변하고, 중구난방으로 싸움박질이나 해대는 이유가 뭘까요?
그 예수교 속에 신(神)이 존재하고, 그 신이 가르치고, 지배한다면, 교회가 그런 짓을 할 수 있게 놔둘까요?
결국, 예수교 속에는 신이란 존재는 없이 오직 어리석은 인간들만 와들대고 있다는 증거지요.

예수교는 사기꾼과 여기에 휘말려든 멀대들의 집단이라고 해도 조금도 틀림이 없을 겝니다. 
예수교는 명실 공히 복마전(伏魔殿=마귀 중에도 고약한 마귀가 모여서 못된 짓만 꾀하는 집단)입니다. ㅎㅎ...아멩 할렐루야!

칡넝쿨 (119.♡.134.149) 2013-11-05 (화) 09:01

<제목> 온전한 십일조의 실천방법

십일조는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믿음의 표상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심을 인정하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의 시대에는 여러분의 물질의 십분의 일만 하나님께 드려선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의 십분의 일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루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십시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아름다운 아내와 갖는 잠자리도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께 십분의 일을 드려야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아내와 아홉 번 잠자리를 가지셨다면,
열 번째에는 하나님을 위해 수고하시는 여러분의 목사님께 그 몫을 드리십시오.
이것이 진정한 십일조의 실천 방안입니다.


餓盲~!!! 割禮淚夜~!!!


<출처>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9&articleId=574893

조선선비 (122.♡.206.2) 2013-11-05 (화) 10:49

원래 십일조는 '사회복지기금'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아는데,

목사에게 주는 것으로 아는 교인들이 꽤 있군요....

야훼도 참 못나기도 하군요....

그 정도 돈이 있어야 움직이는 것을 보니....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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